[단독]전공의 이탈에 불법 의료 내몰린 간호사… 이틀새 134건 신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3일 03시 00분


처방권 없는데 의사 업무 떠맡아
별도 훈련 안받은 채 PA 투입도
정부 동원령에 “법적 보호부터”
2020년엔 ‘무면허 의료’ 고발 당해

대통령실 몰려간 의사들 서울시의사회가 22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개최한 ‘제2차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서울뿐 아니라 울산, 전남, 경남 등 전국 
곳곳에서도 궐기대회가 잇따랐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대통령실 몰려간 의사들 서울시의사회가 22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개최한 ‘제2차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서울뿐 아니라 울산, 전남, 경남 등 전국 곳곳에서도 궐기대회가 잇따랐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심정지 환자 발생 시 간호사가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중환자실로 들어가 의사가 올 때까지 버틴다.’

20일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들에게 내려진 지침이다. 이날부터 시작된 전국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진이 대폭 줄면서 나온 고육책이다. 그러나 현장의 한 간호사는 “간호사 혼자 환자를 데려가서 의사가 올 때까지 버티라는 이야기는 환자가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심정지 환자는 옮기는 과정에서도 시시각각 상태가 변한다. 흉부 압박 외에 약을 투여해야 할 수도 있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산소를 주입해야 한다. 하지만 간호사에겐 약이나 산소 등을 처방할 수 있는 처방권이 없다. 현행 의료법상 진료나 처방은 의사만 할 수 있고 간호사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한정돼서다. 이 때문에 통상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길 때에는 의사가 곁을 지킨다.

● 현장 간호사들 “자칫하다 의료사고 날까 걱정”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 근무중단의 ‘풍선효과’로 기존 의사 업무를 떠맡게 된 간호사 등 현장 의료진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일반 간호사들이 별도의 교육이나 훈련 없이 갑자기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배치돼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대한간호협회가 전공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 20일 오후 6시부터 현장 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를 운영한 결과 22일 오후 6시까지 134건이 접수됐다.

또 다른 수도권 대학병원은 최근 동맥혈 가스 검사를 의사 업무에서 PA 간호사 업무로 변경했다. 동맥혈 가스 검사는 환자 동맥 안에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정맥과 달리 몸 깊숙이 있는 동맥혈을 찔러야 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혈종 등 부작용이 크다. 그간 전공의가 해왔던 업무지만 PA 간호사가 맡게 된 것.

PA 간호사는 주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의료진이다. 약물 처방, 검사, 수술 등 사실상 의사 업무 전반을 대신하고 있다. 현행법상 의사를 대리하는 PA 업무는 불법이지만, 만성적인 의사 구인난에 시달리는 필수의료 특성상 현장에선 암암리에 투입돼왔다. 의료계에서는 이렇게 법의 사각지대에서 활동하는 PA가 전국적으로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번 전공의 이탈로 일반 간호사들이 갑자기 PA 업무에 투입되는가 하면, 기존 PA의 업무량까지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간호사 업무도 하고 의사 업무도 떠맡다 보니 업무 과중으로 간호사도 힘들고 환자도 힘들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자칫하다 의료사고로 이어질 위험성도 크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단순히 의사가 진료하면 안전하고, 간호사가 진료하면 위험하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충분한 준비 없이 평소 담당하던 업무가 아닌 새로운 업무에 무분별하게 간호사가 대체재로 투입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 법적 보호 없는 정부 동원령에 발끈


병원 떠나는 환자들 22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구급차에 짐을 싣고 있다.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대한 반발로 광주·전남 지역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병원을 비운 지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진료 차질이 각급 병원까지 연쇄적으로 확산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병원 떠나는 환자들 22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구급차에 짐을 싣고 있다.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대한 반발로 광주·전남 지역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병원을 비운 지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진료 차질이 각급 병원까지 연쇄적으로 확산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특히 정부가 전공의 빈자리를 PA 간호사로 보충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현장에선 논란이 거세다. 간호사들이 불법에 내몰리지 않도록 보호 장치는 마련하지 않은 채 전공의 공백을 임시방편으로 메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19일 “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PA 간호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하자마자 대한간호협회가 “사전 협의된 바 없다”며 즉각 일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엔 일부 간호사들이 정부가 지시한 대로 일했다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당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21일에도 PA 간호사가 처방을 내렸다”며 “의사 업무 중 간호사와의 업무 영역이 모호하게 구분되는 일들은 간호사에게 몽땅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복지부는 이르면 다음 주 중으로 PA 간호사 업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이들의 의료 현장 투입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한간호협회 등에서 PA 간호사 투입 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경감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이번 주 중 협의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PA 간호사는 한시적으로 투입되며 행정명령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의료대란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 PA 간호사 개선협의체를 통해 PA 간호사 합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전공의 이탈#불법 의료#간호사#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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