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시키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DSR을 적용하면 전세대출 한도가 줄어들어 당장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이번 결정으로 가계부채 증가나 전세 가격 상승 추세를 꺾기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국회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전세대출에 대한 DSR 적용을 추진하지 않기로 최근 내부 결정을 내렸다. 금융위는 연초 업무보고에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하기로 하고, 이를 연내에 시행하겠다고 했다. DSR은 대출받은 사람의 연간 소득 대비 각종 대출의 상환 원금과 이자 등의 비율이 4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대출 규제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전세대출 한도가 줄면 주택 매입이 힘든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저해될 수 있다는 의견을 금융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월세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여기에 전세 수요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면 월세가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실 중심으로 각종 주거 규제 완화 대책을 쏟아내는 와중에 금융위가 엇박자를 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전세대출의 경우 만기가 2년으로 일반 주택담보대출보다 상환 기일이 짧은 등 성격이 다르다”며 “가계부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겠지만, 서민들의 주거 안정 역시 무시할 수 없어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월세 전환’ 속도 늦춰질듯… 전셋값 상승세 이어질 우려도
금융위 ‘전세대출 DSR 규제’ 백지화 1886조 가계빚 관리는 여전히 숙제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지 않기로 방침을 변경한 것은 대출 규제 강화가 부동산 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존 정부 정책들과 방향성을 맞춘다는 점도 판단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해법은 또다시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2일 “DSR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겠다는 발표 이후 대통령실에서 정책 방향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는 재건축 규제 완화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 연장 등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대출 규제 강화가 이와 배치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2015년 DSR을 도입한 이후 비율 조정을 통해 대출 규제를 강화해 왔지만 전세대출만은 예외였다. 2022년 DSR을 소득의 80∼100%에서 40%로 규제 수준을 대폭 강화했을 때도 전세대출은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전세대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됐던 2020년 3월 기준금리가 0.75%로 낮아진 뒤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어 0.5%까지 낮아진 저금리기조가 계속됐고 이듬해 11월에야 1%대가 됐다. 전세대출은 2022년 170조 원을 넘어섰다. 전세 보증금의 80∼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도 성행했다. 전세대출이 집값 상승을 견인하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대출 규모는 1886조4000억 원에 이른다. 3개 분기 연속 증가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 내에서는 가계 빚을 관리하기 위해 ‘마지막 카드’인 전세대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달 9일 DSR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안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전세대출을 받지 못한 이들이 월세로 몰리면 월세가 오를 수 있다. 세입자가 월세 전환을 요구하면 집주인들이 한 번에 목돈을 돌려줘야 해 부동산 시장 혼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 상황이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박사는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올라온 것은 맞지만, 전세대출 규제 강화는 부동산 시장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전세대출 규제 백지화로 전셋값 상승 추세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전셋값은 0.04% 오르며 40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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