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해로울 수 있다? 식품처럼 성분표 필요할지도[책의 향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4일 01시 40분


음식과 달리 옷 성분엔 규제 없어… 제조사도 모르는 화학물질 함유
호르몬 교란-발암 등 유해성 우려… 독성물질 함유 옷 피하는 법 소개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올든 위커 지음·김은령 옮김/404쪽·2만 원·부키

중국의 한 염색 공장. 저자는 “직조, 염색 등 옷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유독 화학물질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게티이미지
중국의 한 염색 공장. 저자는 “직조, 염색 등 옷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유독 화학물질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게티이미지
“취급허가 없이 살 수 있는 소비재 중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인 ‘화학 프로필’을 갖고 있다.”

안전한 옷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에코 컬트(Echo Cult)’의 편집장인 저자는 패션 제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공, 직조, 염색 등 제작 전 과정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복잡한 화학물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 기분 좋게 뜯은 새 옷에서 나는 독한 약품 냄새에 얼굴을 찡그린 경험이 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저자는 연구자, 패션 전문가, 승무원, 의류 공장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 책을 썼다.

옷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유독성은 상상 이상이다. 음식, 주거 등 온갖 분야에서 웰빙 바람이 불어도 ‘안전한 옷’에는 여전히 무관심한 편이다. 법에 따라 엄격히 칼로리와 영양성분을 표기해야 하는 음식과 달리 옷의 성분은 규제가 없어 제조사나 유통사조차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옷 한 벌에 많게는 5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이 중에는 호르몬을 교란하고 암과 불임을 유발할 수 있는 독성물질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항공 승무원들이 옷에 묻은 화학물질이 유해하다며 2012년 집단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밀폐된 환경에서 유니폼을 상시 착용하는 승무원들이 화학물질로 인해 호흡 곤란과 발진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공사는 “개인이 민감한 탓”이라고 반박했고, 법원도 “유해성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항공사 손을 들어줬다.

“옷을 먹는 건 아니잖아요.” 집요하게 취재하는 저자에게 어떤 패션회사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어린 자녀가 있는 가구 124곳의 집 먼지를 분석한 결과, 모든 집에서 합성섬유 염색에 쓰이는 ‘아조 분산염료’가 검출됐다. 옷에 묻은 염료가 떨어져 나간 뒤 공기 중에 떠다니다 호흡기를 통해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옷의 화학물질 말고도 근무 환경, 스트레스 등 현대인의 질병 원인은 다양하다. 이에 따라 의류의 화학물질과 건강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저자의 실험정신도 돋보인다. 인도 티루푸르 공장을 직접 방문해 옷 제작 과정을 조사하고, 구매한 제품을 친환경 인증 기관 ‘오코텍스’에 맡겨 실험했다. 분홍 인조가죽 미니스커트, 네온 오렌지색 반투명 하이힐 등의 각종 검사 결과가 책에 담겼다.

책을 읽는 내내 1962년 발표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떠올랐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생태계에 일으키는 문제를 보여준 이 책은 출간 당시 감상주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제는 고전이 됐다. ‘죽음을 입는다’는 다소 과장된 제목 역시 언젠가는 당연한 상식이 될지도 모른다. ‘모조품과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피하라’ 등 소비자가 독성물질이 묻은 옷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팁도 유용하다.

#옷 성분#화학물질#독성물질#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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