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처방합니다[내가 만난 名문장/박슬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5일 23시 21분


“쓰는 것은 개인적인 일로,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타니아 슐리의 책 ‘글쓰는 여자의 공간’에 소개된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말이다.

박슬기 한의사·드라마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작가
박슬기 한의사·드라마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작가
평생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시를 썼던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한쪽이 나를 지치게 할 때 다른 쪽이 나를 쉬게 한다”고 말했다. 진료실에서 셜록 홈스를 창조한 코넌 도일이나 소설 ‘성채’의 A J 크로닌도 그러했을 것이다. 나 역시 처방을 쓰거나 극본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의사로 진료하며 만난 많은 분들로 인해 내 이야기의 세계도 성장해 왔기에, 작가로서의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한의사로서의 나일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쓴다’는 행위를 통해 연결된다는 것이 나는 때로 경이롭다. 쓰는 행위는 하나의 세계를 여는 작업이며 한 인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다. 처방을 쓰기 위해 나는 진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먹는지, 잘 자는지, 남모를 고난으로 아픈 것은 아닌지, 이 증상은 왜 하필 지금 나타났을 것인지를 고민한다. 한 사람의 체질과 개별적 상황이란 모든 변수에 최적의 처방을 ‘쓰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극본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어떤 사람이라서 이런 행동을 하며, 다른 인물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한약 처방을 써내는 것과 극의 한 장면을 쓰는 것은 무척이나 많이 닮아 있다. 체질과 약재의 특성을 조화롭게 구성한 처방을 써내고, 한약재 하나하나가 서로 시너지를 이룰 수 있도록 정성껏 달여 내야 제대로 약효를 볼 수 있듯, 극본도 인물과 사건들이 촘촘히 엮이도록 해야만 보시는 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홀로 어두운 책상 위에서 고독히 긴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좋은 처방을 쓰고 진료실을 나설 때, “그래 이거야!” 하는 신을 쓰고 즐겁게 책상을 떠날 때,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다가오는 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글쓰기를 처방해 드리고 싶다. 다정한 봄이 잔인해지는 날이 있거든, 일기를 써 보면 어떨까.

#글쓰기#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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