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나무 암’ 재선충병 2년새 3배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6일 03시 00분


작년 10월~올 4월도 100만그루 예상
“10년내 소나무 78% 사라질 수도”

24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운정리 도미골 인근 야산(해발 280m)을 드론으로 항공에서 촬영한 모습. 소나무숲이 재선충병으로 고사해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밀양은 소나무 재선충병 ‘극심’ 지역으로 분류됐다. 2021년 이후 발생한 피해 면적은 9000만 m²로 축구장(7140m²) 1만2605개와 맞먹는다. 밀양=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최근 2년새 소나무 재선충병이 3배 넘게 늘어나는 등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한 확산세가 나타나면서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10년 이내 우리나라 소나무 약 78%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간 71조 원에 이르는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소나무림을 살리기 위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재선충병 피해 나무는 2020년 30만8000그루, 2021년 37만8000그루, 2022년 106만6000그루로 2년 새 3배 넘게 늘었다. 재선충병 피해 나무 규모는 10월에서 다음 해 4월 초까지 집계한다. 재선충병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가 활동을 중단하는 기간에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피해 나무를 찾아 베어내는 방제 작업을 진행하며 피해를 파악한다. 2023년 기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피해 나무가 100만 그루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돼 확산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선충병은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던 재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해 양분을 차단하면서 나무가 말라 죽는 병이다. 치료약이 없고 감염되면 100% 고사해 이른바 ‘소나무 암’이라고도 불린다.

“산 곳곳 소나무 공동묘지”… 36년간 재선충에 1500만 그루 베어


한반도 온난화에 재선충 급속 확산
“환경 등 소나무 공익 가치 年71조
예산 적기 투입-신속한 방제 시급”

울산 울주군 문수산 일대에서 울주군이 고용한 방제작업단이 재선충병에 죽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훈증처리 작업을 하고있다. 피해 나무를 약품 처리해 군청색 비닐(타포린)로 둘러씌운 모습이 마치 무덤을 연상케 한다. 울주군 제공
25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운정리 도미골 인근 야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숲에는 붉게 마른 소나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 모두 재선충병 피해를 입은 나무다. 이 산에 오르던 이상훈 씨(43)는 “지난해 10월까진 소나무가 우거져 울창하고 푸른 숲이었는데, 이젠 대부분 뻘겋게 말라 죽었다”며 “밀양에선 멀쩡한 소나무 숲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곳도 곧 벌거숭이 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 울주군 청량읍 문수산 일대에선 16일 소나무 방제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기톱의 요란한 굉음이 울려퍼지더니 높이 20m의 소나무가 힘없이 쓰러졌다. 조각난 나무들은 인근 파쇄장으로 옮기거나 살충제를 뿌리고 밀폐하는 훈증 방제 처리했다. 등산객 김도형 씨(52)는 “잘라낸 나무가 너무 많아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산 곳곳에 들어선 소나무 훈증 더미를 보니 마치 공동묘지 같다”고 말했다.

● 36년간 재선충 방재 등 예산만 1조2000억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재선충병이 급격하게 확산한 지역은 경남 밀양시를 비롯해 경북 경주 포항 안동시, 대구 달성군, 울산 울주군 등 주로 영남권이다. 36년 전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재선충병으로 지금까지 잘려 나간 소나무는 무려 1500만 그루가 넘는다. 방제 등에 들어간 예산만 1조2000억 원에 이를 정도다. 가장 심각했던 시기는 2013~2016년이다. 이 기간 628만6000그루의 소나무가 죽었다. 산림청이 대대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체계적인 방제 전략을 펼쳐 2017년부터 진정세에 접어들었고 2020년엔 30만8000그루까지 피해 규모가 줄었다.

그러나 2020년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재선충병 확산세에 불을 지폈다. 재선충병 감염 나무가 감소 추세인 데다, 코로나19 확산에 맞물려 숲에 대한 예찰과 벌목이나 훈증 처리, 나무주사 등 방제 조치가 소홀해지면서 2021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산림청은 일본 재선충병 전문가인 후타이 가즈요시 교토대 명예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재선충병을 방치하면 10년 이내에 우리나라 소나무 78%가 고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4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운정리 도미골 인근 야산(해발 280m)을 드론으로 항공에서 촬영한 모습. 소나무숲이 재선충병으로 고사해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밀양은 소나무 재선충병 ‘극심’ 지역으로 분류됐다. 2021년 이후 발생한 피해 면적은 9000만 m²로 축구장(7140m²) 1만2605개와 맞먹는다. 밀양=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 한반도 온난화에 방제 부실까지 겹쳐
기후 변화도 재선충병 확산의 주요 원인이다. 한반도 온난화로 유충으로 재선충병을 소나무에 옮기는 솔수염하늘소의 출현이 빨라졌고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 국립산림과학관에 따르면 올해 솔수염하늘소가 성충으로 우화(羽化)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는 2014년보다 엿새 빨라진 4월 17일이다. 매개충의 활동 기간과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소나무 피해가 커진 것이다.

줄어든 방제 예산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림청은 올해 방제 예산으로 국비 1200억 원을 마련하려 했다. 지방비(30%) 500억 원과 매칭해 17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제 반영된 국비는 805억 원에 불과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정부 재정 여건상 방제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기엔 제한이 있다”고 했다. 현장에선 방제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울산시 관계자는 “현재 예산 57억 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피해목 6만 그루를 당장 제거하기 어려워 번식력이 큰 재선충병의 특성상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 “방제 속도 높이고 대체수림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환경, 문화, 휴양 등 연간 71조 원의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소나무림을 살리기 위해선 정확한 예찰, 신속한 방제, 적극적 예산 투입 등 3박자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운 경북대 생태환경관광학부 교수는 “방제 모범 사례로 꼽힌 스페인의 경우 감염된 소나무를 찾고 베어내는 데 꾸준히 예산을 투입한다”며 “당장 재선충병이 감소세를 보인다고 예산을 줄이면 장기적으로 더 큰 예산을 지출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체 수종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선주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피해가 확산하는 소나무림을 내화성이 강한 버드나무, 팽나무 등 대체 수림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산불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과학적 예찰을 도입하고 신속한 방제 체계를 갖춰 재선충병 확산세를 막겠다”며 “집단 발생지는 소나무가 아닌 다른 유망 수종으로 전환하고 재선충병에 강한 소나무 수종을 개발하는 연구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나무#암#재선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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