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해 5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해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법으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경제학적으로 이민이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연구들이 있다”며 “육아 관련 복지를 개선하고 일-가정 양립 등 포괄적 정책이 필요한데 많은 국가에서 이미 채택한 방법이 이민 정책”이라고 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특별비자 도입 정책을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적 석학의 이 같은 주장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 서울시에서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가 이달 초 저출산 극복을 위한 ‘탄생응원 프로젝트’ 중 하나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만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필리핀 국적 100명만 고용하는 소규모 사업이라 아직까진 말 그대로 시범 사업에 불과하다.
2022년 유엔이 내놓은 세계인구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운용해 왔던 싱가포르는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 1.02명을 기록해 238개국 중 다섯 번째로 낮았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구절벽에 직면하게 된 우리나라와 달리 싱가포르는 약 80년 뒤 인구가 소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가사도우미 등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민 정책 때문이다.
싱가포르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564만 명 중 싱가포르 국민은 355만 명(약 63%)에 불과하다. 157만 명(약 28%)은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52만 명(약 9%)은 영주권자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이민자라는 뜻이다. 우리도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과 함께 싱가포르처럼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받아들여야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이민청 설립에 열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만난 한 고위직 공무원은 “냉정하게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 중 하나”라며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수용하겠다고 하지만 솔직히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커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주변에서 서구권 출신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던 이가 우리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 출신에겐 혐오감마저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걸 직접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이민자와 외국인을 대하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구글 창업자 모두 이민자였고, 챗GPT 개발사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도 알바니아 출신 이민자다. 미국 내 상위 인공지능(AI) 기업 43개 중 28개 창업에 이민자가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민자에게 허드렛일이나 맡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저출산으로 나라가 없어질지도 모를 상황에서 어쩌면 이민자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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