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9만3700건… 11년간 내리막
‘혼수-주거비 부족에 결혼 못해’ 1위
결혼 줄며 합계출산율도 동반 감소
둘째 이상 출생아 첫 9만명대 추락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정모 씨(34)는 최근 결혼 문제로 2년을 만난 여자친구와 다퉜다. 내년쯤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친구와 달리, 정 씨는 결혼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느낀다. 정 씨는 “나와 여자친구 벌이로는 번듯한 신혼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아이가 생겼을 때 양육비를 감당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준비가 되는 날이 오긴 오나 싶다가도 딱히 결혼하지 않고 살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최근 10년간 혼인 건수가 40%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한 부부들조차 아이를 한 명만 낳거나 아예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으로 돌아서고 있는 가운데 혼인 건수가 더 쪼그라들면 0.6명대의 출산율이 더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3700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19만1700건)과 비교하면 1%가량 늘었지만 10년 전인 2013년(32만2800건)과 비교하면 40% 줄어든 규모다.
2011년까지만 해도 매년 오르내림을 반복하던 혼인 건수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1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쭉 내리막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기간 미뤄진 결혼 수요가 몰리며 반짝 늘어났지만, ‘코로나19 특수’도 점차 사라지는 만큼 증가세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도 1년 전보다 21.5% 치솟았던 1월의 혼인 건수는 12월엔 1년 전보다 오히려 11.6% 줄었다.
결혼하는 부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데는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게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2년 20.3%에서 2022년 15.3%로 떨어졌다. 반면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33.6%에서 43.2%까지 늘었다.
혼인에 따른 금전적인 부담도 혼인 건수 감소로 이어졌다. 2022년 20∼40대가 꼽은 결혼하지 않은 이유 1위는 모두 ‘혼수비용, 주거 마련 등 결혼자금 부족’이었다.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응답은 2위였다.
문제는 비혼 출산이 드문 한국의 현실에서는 결혼이 줄면 출생아 수도 같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이 2025년 0.65명으로 저점을 찍은 뒤 이듬해부터 반등, 2040년에는 1명을 넘어선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혼인 건수가 더 줄어들면 출산율이 반등하기는커녕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 0.6명대로 떨어졌는데, 혼인 건수가 회복되지 않으면 이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를 한 명만 낳거나 아예 안 낳는 부부가 많아지는 점도 ‘2040년 합계출산율 1명대 회복’ 전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해 둘째 이상 출생아 수는 1년 전보다 1만2400명 줄어든 9만17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을 밑돌았다. 2018년에는 15만3700명이었는데 5년 만에 40.0% 급감하며 같은 기간 첫째 아이 감소 폭(20.0%)의 두 배에 달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다는 인식 때문에 그동안의 저출산 정책은 결혼 지원에 집중해 왔다”며 “하지만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이 늘고 있는 만큼 출산과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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