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미술사에서 조지아 오키프만큼 존재감 있는 여성이 있을까? 그녀는 꽃을 주로 그렸다. 거대하게 확대된 꽃을. 남성이 지배하던 20세기 초 뉴욕 화단에서 꽃 그림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키프는 자신만의 독특한 꽃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다.
오키프가 ‘봄(1924년·사진)’을 그린 건 37세 때, 사진가이자 화상이던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와 결혼한 해였다. 미국 서부 시골의 미술 교사였던 오키프는 스티글리츠 덕에 1917년 뉴욕 화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유부남이던 스티글리츠는 그녀에게 성공의 날개와 불륜녀라는 낙인을 함께 선사했다. 불륜 관계 6년 만인 1924년 정식 부부가 되면서 오키프는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림 속 작은 건물은 스티글리츠의 암실이 있던 뉴욕 집이다. 부부는 종종 같은 작품 소재를 택하곤 했는데, 남편은 눈 내리는 겨울날의 집을 촬영한 반면, 오키프는 따뜻한 봄날을 그렸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인생의 봄날을 맞았다고 여겼던 걸까? 집을 둘러싼 초록 나무에 연보라색 꽃이 만발했다. 굴뚝과 창문 등은 과감히 생략했고, 집 앞 하얀 깃대는 윗부분을 곡선으로 처리했다. 지붕 위 검은 화살은 위쪽을 향해 있고, 전선 같은 두 줄도 하늘 위로 뻗어 있다.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하늘 높이 비상하고픈 화가로서의 욕망과 만개한 봄꽃처럼 풍요롭고 따뜻한 심리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런데 열린 문 내부가 깜깜하다.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표현한 것일까. 스티글리츠는 결혼 후 젊은 여성과의 외도로 오키프에게 큰 상처를 준다.
오키프는 인생의 봄을 사막에서 찾았다. 남편 사후 뉴욕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뉴멕시코의 사막 지역인 샌타페이로 이주한 이후였다. 대자연은 그녀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동물 뼈, 꽃, 사막 등이 등장하는 독창적이면서 몽환적인 그림으로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사람은 배신했지만, 예술과 자연은 결코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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