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을 둔 워킹맘 A 씨. 입학을 코앞에 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학교 시설 공사로 입학이 2주 미뤄진 것. ‘돌봄 공백’과 마주한 A 씨는 휴가를 내야 하나, 친정어머니 손을 빌려야 하나 전전긍긍했다. A 씨를 구원한 건 태권도장이었다. 태권도장이 종일반을 운영하기로 하면서 동네 학부모들 숨통을 터준 것이다.
태권도장은 현존 최고 맞춤형 돌봄 센터다. 시작은 ‘하교 서비스’다. 필요에 따라 다음 학원으로 인계하는 ‘셔틀 서비스’도 제공한다. 도장에 머무는 동안에는 태권도뿐 아니라 요즘 초등학교 필수 종목인 줄넘기는 기본이고 축구, 피구 같은 구기 종목도 가르친다. ‘태권도장 겨울 캠프 때 스키를 처음 타 봤다’는 아이도 적지 않다. 태권도장은 학교 체육 실기시험은 기본이고 학예회 준비도 돕는다.
태권도장 이름은 ‘지역명+관장 졸업 대학명+효(孝)+태권도’ 구조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이름에 정말 충실하다. 태권도장은 ‘자립심을 길러준다’면서 도장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까지 불러다 주말 합숙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한다. 합숙을 마친 저학년 아이들은 부모와 만나자마자 눈물을 터뜨리기 일쑤다. 효심이 깊어진 건 물론 고학년 형 누나들과 하룻밤을 함께 보낸 것만으로 ‘내 고집대로만 했다가는 큰코다치게 된다’는 사실까지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좋은 ‘인성 교육’이 또 있을까.
말하자면 태권도장이 있기에 대한민국 출산율이 그나마 아예 제로(0)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태권도장만큼 한국의 여성 경제참가율을 끌어올리는 업종도 없다. 아이 넷을 키우는 B 씨는 “회사에 있을 때 남편보다 (아이들과 더 가까이에 있는) 태권도 관장님과 더 자주 통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번 학기부터 초등학생이 오후 8시까지 학교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늘봄학교’를 도입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1학년에게 문화예술·체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문체부가 마련한 프로그램을 훑어보며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로서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학부모들이 체육 활동을 선호하는 건 태권도장처럼 해달라는 거지 은퇴 스타 선수들이 얼굴을 비춰달라는 게 아니다.
태권도장은 되는데 관제(官製) 돌봄 프로그램은 왜 안 될까. 이 저출산 시대에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이들 대부분은 아이를 얼른 키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 저녁은 언제든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정부는 이 문제는 내버려두고 ‘퍼블릭 케어(public care)’만 강조한다. 부모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해줄 수 있다고 믿는 건 오만이다. 그러니 관제 돌봄을 ‘남의 것’으로 느끼는 부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늘봄학교 이전 버전인 돌봄학교 참여율은 지난해 기준 11.5%에 그쳤다. 정부가 늘봄학교를 성공시키고 싶다면 제발 ‘태권도장은 어떻게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대만 등에서도 돌봄의 끝판왕이 되었나’부터 연구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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