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이야기,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만남과 헤어짐이 물 흐르듯 이어진대도 어떤 사랑은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오래 살며 사랑하는 일’은 머나먼 행성만큼 요원하다.
19∼31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이처럼 평범함이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2000년생 동갑내기 재은과 윤경이 만나 동성 가족을 이루고, 딸을 입양해 함께 살아가는 100년의 시간을 그린다. 제59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이래은이 연출했다. 6일 정동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초연 대본을 읽었을 땐 다음 일이 쉽게 예측돼 꾸벅꾸벅 졸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장을 넘긴 순간 눈물이 탁 터졌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현실에서 오롯이 지켜본 적이 없기에…. 마음이 무너진 거예요.”
주인공 재은과 윤경의 혼인신고서가 반려되자 곧장 유언장을 작성하는 장면은 관객 가슴에 파문이 일게 한다. 이 연출가는 “동성 부부는 병원에 가도 서로 보호자조차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이 그들에겐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극 중 일대기는 ‘우주’와 연결된다. 처음 만나 UFO(미확인비행물체)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닿고, 먼 미래엔 우주정거장에서 재회한다. 이 연출가는 “슬픔과 고통이 반복되는 삶의 순간들이 까맣고 긴 터널처럼 이어지는 형상을 머릿속에 그렸다. 이를 표현하고자 분야별 디자이너들과 논의해 무대 바닥에 궤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평범한 사랑 이야기’임을 보여주고자 무대와 관객 간 거리를 좁히는 보조 무대를 설치했다.
세 주인공의 10대 시절은 특히 섬세한 대사로 그려진다. 시대별 10대를 적확히 표현하고자 당시 정치사회와 대중문화부터 양육자 세대의 성장 배경까지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8세부터 99세까지 넘나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액팅코치, 안무가와 머리를 맞대고 신경심리학적 연구도 했다. 8세 전후 어린이를 연기할 땐 윗입술을 바짝 올리고, 에너지가 사방으로 분출하듯 걷는다. 80대가 되면 무게 중심을 골반 앞으로 움직이고, 길어진 인중과 밭은 숨으로 말한다. 그는 “과학적 근거로 몸을 만들면 슬픔과 고통을 연기하더라도 배우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눈물을 뚝뚝 떨구기도, 봄 닮은 미소를 짓기도 하던 그에게 사랑은 단지 이성을 향해 타오르는 것이 아니다. “텅 빈 우주 어딘가에 표류할 서로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깜박깜박 신호를 보내는 것, 다시 말해 계속 들여다보고 면면을 발견하는 것. 그게 사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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