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요리를 배워보기로 했다[2030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1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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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이번에 올 때 반찬통들 좀 가져와라.” 엄마는 매번 반찬통이 부족하다. 반찬 하나를 해도 딸들 세 집으로 가는데, 심지어 하나만 하시는 일도 없다. 각종 김치에 장조림, 진미채볶음, 콩자반까지 딸들을 만나는 날이면 엄마는 늘 전날 밤까지 부엌에서 분주하다. “엄마, 힘들게 뭘 또 이렇게 했어.” 그 고생이 훤히 그려져 속은 상하지만 ‘이게 엄마 재미’라는 말에 이제는 지기로 했다. 말은 그리 해도 양손 가득 반찬통을 받아오는 날이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냉장고에 엄마 반찬이 채워지면 허기진 마음도 채워진다. 그 뒤 며칠간은 얼른 집 가서 ‘엄마 밥’ 먹을 생각에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아, 대박!” 이번에 ‘간단히’ 싸 왔다는 반찬 보따리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양념게장과 겉절이가 들어 있었다. 간장게장은 사 먹어도 제법 솜씨 좋은 집들이 많은데 양념게장은 그렇지 않다. 재료 자체도 덜 싱싱한 것을 쓰는 경우가 많거니와, 양념도 내 입에는 너무 달다. 세 딸이 다 엄마표 게장만을 찾으니 딸들이 오는 날은 엄마가 게장을 만들어 두는 날이 됐다. 겉절이는 오랜만이었다. 어릴 땐 김치 담그는 엄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간 좀 보라며 손으로 쭉 찢어 돌돌 말아 입에 넣어주는 것을 받아먹곤 했다. 그러다 결국 밥솥에서 흰밥을 떠와 밥 몇 술을 뜨고야 말았던 것은 비단 우리 집만의 모습은 아니었을 테지.

갓 만든 겉절이. 엄마는 뚝딱 만들지만 엄마 없이는 좀처럼 먹지 않았던 음식. 그 반찬통 하나에 며칠간의 식사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말했다. “맛있는 겉절이 하나만 뚝딱 만들 수 있어도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지 않아?” 문득, 엄마에게 요리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바빠지고 약속이 많아지면서 요리와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가끔 하더라도 손이 많이 가는 밑반찬보다는 한 끼 식사로 끝낼 수 있는 일품요리가 주를 이뤘고, 뭐가 됐든 인터넷만 검색해도 레시피는 넘쳐나니 당장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주아주 나중에, ‘엄마 밥’이 먹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잠깐씩이나마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못된 생각을 씻기라도 하듯 부정하기 바빴다.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두는 수밖에 없다고 막연히 외면했다. 그러다 갑자기 전에 없던 결심이 선 것은 ‘겉절이여서’였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면서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동시에 집마다 맛이 다른 음식. 엄마가 어떤 재료, 어떤 제품을, 어떤 비율로 쓰는지 알지 못하면 먼 훗날 언젠가는 재연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지 모르는.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을.

“엄마, 나 주말에 요리 배우러 가도 돼?” 내친김에 게장까지 배워보기로 하고, 그 옛날 초등학교 ‘가정’ 과목 실습 시간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선생님 옆에 선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누구로부터든 점수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되도록 천천히 알기를 바라는 먼 훗날의 어떤 그리움을 꼭꼭 씹어 예습하는 마음으로.

#엄마#요리#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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