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조선후기 시화사(詩話史·시와 이야기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한국 전반의 시화사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신간 ‘한국 시화사’(성균관대출판부·오른쪽 사진)를 펴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63·왼쪽 사진)는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교수는 책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까지 시화사를 총망라했다. 시화는 시와 이야기가 섞인 책으로 시에 얽힌 일화, 시 작법, 시인에 대한 평가 등이 포함된다.
안 교수는 한국 시화의 출발점을 12세기 고려 문인 정서가 1170년 이전에 쓴 걸로 추정되는 ‘과정잡서(瓜亭雜書)’로 보고 있다. 정서는 유배생활 중 왕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래 정과정곡(鄭瓜亭曲)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정잡서는 현존하지 않지만, 속파한집서(續破閑集序) 등을 통해 그 존재가 알려져 있다. 실물이 남아 있는 고려시대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1211년)을 한국 시화의 효시로 보는 게 학계 통설이다. 과정잡서는 이보다 40년 이상 시기가 앞선다.
신간에는 안 교수가 확보한 시화 자료들이 풍부하게 담겼다. 안 교수는 일제강점기 승려 시인 석전 박한영(1870∼1948)의 시론서 ‘석림수필’(1943년)을 2017년 경매로 구입해 분석했다. 그는 “석림수필은 일화를 많이 담은 전통 한국 시화와는 다른 장편의 시론”이라며 “선종과 한시는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시선일치(詩禪一致)의 시각에서 분석한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기존 연구의 사각지대였던 현대 시화사도 폭넓게 조명했다. 반드시 한시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시조 시인 조남령(1918∼미상)이 1949년 문예월간지 ‘학풍’에 기고한 ‘시화삼제(詩話三題)’를 소개하며 “시조를 보는 독자적 안목을 제시한 문예비평”이라고 평했다. 1914년 10월∼1915년 3월 잡지 ‘공도’에 ‘조선고대부인시문고(朝鮮古代婦人詩文考)’를 연재하는 등 여성 시문학에 일찍이 주목한 문인 김원근(1870∼1944)의 이야기도 담겼다.
안 교수는 “한국 시화는 시 창작법을 위주로 설명하는 중국 시화와 달리 시에 얽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민족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