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2021년)는 신유박해(1801년) 때 정약전, 약종, 약용 삼형제가 각기 배교와 순교를 선택했던 일로 시작된다. 정약용은 이보다 앞서 조선 천주교회 창립의 주역이었던 이벽(李檗·1754∼1786)의 죽음을 애도한 바 있다.
이벽의 세례명은 요한. 시인의 형인 정약현의 손아래 처남으로 8년 연상이었다. 훤칠한 키에 총명한 머리로 시인에게도 큰 영향을 줬던 인물이다. 시인의 형제에게 천지조화의 시작과 삶과 죽음의 이치에 대한 천주교의 가르침을 전했고(‘先仲氏墓誌銘’), 하느님이 조선에 복음을 들여보내기 위해 쓴 주요한 연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클로드샤를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하지만 시는 갑작스러운 죽음 뒤 남은 자의 슬픔만을 드러냈을 뿐, 천주교와 관련된 고인의 행적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사일런스’(2017년)는 17세기 일본에 천주교를 전교하기 위해 온 포르투갈 신부의 신앙적 고뇌를 담고 있다. 나가사키의 부교(奉行·장관) 이노우에의 협박과 회유에 시달리던 신부는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려 고문받는 일본인 신도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하고 만다.
이벽 역시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미사를 인도하던 신부 같은 존재였기에 조정의 탄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비밀 집회가 적발되고 장소 제공자인 역관 김범우(金範禹)는 참혹한 형벌을 받은 뒤 죽음을 맞았다. 또 이벽 자신은 배교하지 않으면 목을 매 자진하겠다는 아버지의 압박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벽은 짐짓 배교한 것처럼 행동하다 돌연 병으로 세상을 떴다.
배교 뒤 이벽의 믿음은 어떠했을까? 영화 속 배교한 신부들은 대화 중 자신도 모르게 ‘우리 주님’이란 말을 사용하거나, 남몰래 신도의 고해성사를 받아준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이벽의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신의 침묵이란 화두를 던졌다면, 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천주교 신앙을 공백으로 남겨 두었다. 영화는 엔도 슈사쿠의 원작과 달리 배교한 신부의 최후를 보여준다. 불교식으로 화장된 호드리게스 신부의 손에 작은 십자가가 감춰져 있던 것처럼, 시의 공백 뒤에도 이벽의 파란만장한 믿음의 삶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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