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겨냥 잇단 소송전의 이유
구글, 애플 등 빅테크 ‘독점 관행’에 EU는 법으로, 美는 소송으로 ‘전쟁’
“중독 야기했으니 복지 부담 지라”… SNS에 ‘담배와의 전쟁’ 논리 적용
빅테크 소송의 다음 타깃은 AI 기업… FTC “혁신 뒤 위법 두고보지 않아”
《“아무도 빅테크 경영진을 선출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미국 민주·공화당 두 상원의원이 뉴욕타임스(NYT)에 실은 공동 기고문은 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한 의원은 진보 색채가 뚜렷한 엘리자베스 워런, 다른 의원은 낙태 금지법 발의의 주역 린지 그레이엄이다. 좌우 극단적 성향인 의원들이 ‘공동의 적’ 빅테크를 상대로 뜻을 모아 더 울림이 컸다.
두 의원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등 5대 빅테크가 “경제, 사회, 민주주의에 대해 너무 많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며 직격했다. 선출직이 아닌 빅테크 경영진이 디지털 세계는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절대적 지위를 누린다는 취지다. 미 의회가 빅테크 독점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로도 들렸다.》
유럽도 역대급으로 강한 빅테크 규제법인 디지털시장법(DMA)이 7일 시행됐다. 유럽연합(EU)이 DMA 규제 대상으로 지목한 6개 기업은 틱톡 모기업 바이트댄스(중국)를 빼면 모두 미 기업이다. 미 재계는 ‘미 기업 죽이기’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나 미 의회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미중 갈등 등으로 유럽과의 협력이 중요한 상황이란 점도 한몫했지만, 빅테크 독점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를 드러낸 방증이란 분석도 나왔다.
● “혜택만 누리고 혁신 뒤에 숨지 말라”
사실 미국은 기업 규제를 법으로 명시하는 것엔 회의적이다. 때문에 EU의 DMA와 비슷한 빅테크 규제 법안은 의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 대신 대규모 소송전으로 빅테크와의 전쟁에 나섰다. 미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은 “테크 기업들은 규제가 혁신을 저해한다고 하지만, 미 자본주의는 철도·통신 회사 독점을 규제해 구글이나 애플 같은 ‘신생’ 회사를 키우며 성장했다”고 짚었다.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기업은 단연 구글이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미 법무부를 상대로 검색엔진 및 광고 기술 시장에 대한 두 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미 법무부는 구글이 검색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삼성이나 애플 기기에 구글 검색앱을 선탑재하는 불법 계약을 맺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던 1998년 MS의 웹브라우저 선탑재 소송과 닮았다. 당시 MS의 반독점 소송은 후발 주자 구글이 부상하며 시장이 격변하는 계기가 됐다. 26년이 지나 검색 시장에서 점유율 3% 수준인 MS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법정에서 “구글 독점이 심각하며 인공지능(AI)도 지배하려 할 것”이라고 증언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번 소송도 구글이 패소하면 사업 분할 등으로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
구글의 디지털광고 시장 장악도 소송이 임박했다. 미 법무부와 캘리포니아, 뉴욕주 등은 지난해 “디지털광고 기술(애드테크) 사업부를 해체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시장에선 미 정부가 승소하면 1982년 통신회사 벨시스템(현재 AT&T) 분할 이후 최대 반독점 기업 분할 사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슷한 소송은 유럽에서도 제기됐다. 지난달 독일 언론사 악셀스프링거 등 32개 미디어그룹은 “구글이 디지털 광고를 싹쓸이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21억 유로(약 3조471억 원)를 배상하란 소송을 걸었다.
애플도 난관에 부닥쳤다.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이 애플의 독점 관행을 손보려 소송전에 나섰거나 검토 중이다. 유럽은 DMA 시행 이전인데도 5억 유로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스웨덴 음악스트리밍 앱 기업인 스포티파이가 “애플이 앱스토어 결제만 유도하는 ‘인앱결제’로 경쟁을 방해했다”며 제소한 결과다. 미 법무부도 조만간 앱스토어 독점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관측이다.
● “소셜미디어가 담배와 다를 게 뭐냐”
세계 당국들이 플랫폼 독점과 더불어 문제 삼는 또 하나는 ‘중독’ 이슈다. 빅테크 독점에 철도·통신회사 독점 규제와 같은 잣대를 들이밀었듯, 소셜미디어 중독엔 ‘담배와의 전쟁’과 같은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청소년 중독을 야기해 공중보건 위기가 벌어졌으니, 이에 대한 시정은 물론 복지 부담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미 30여 개 주 법무장관 등이 관련 소송을 건 데 이어 지난달 뉴욕시도 메타와 구글, 틱톡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아이들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안전하지 않은 행동을 부추긴다”고 성토했다.
뉴욕시 등은 이들이 광고 수익을 키우려고 알고리즘을 통해 청소년 중독을 조장했다고 본다. “뉴욕시는 해마다 청소년 건강 프로그램에 1억 달러 이상을 지출한다”며 피해도 호소했다. 해당 소송은 지난달 미 소셜미디어 청문회에서 유족들이 “소셜미디어가 사람을 죽인다”고 비난하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사죄의 뜻을 전한 뒤 불거졌다.
빅테크 독점과 중독 이슈는 미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다. 반면 소셜미디어의 ‘표현의 자유’ 문제는 민주·공화당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특히 이 이슈는 현재 정치적 논란으로 번져 버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건 때 게시글을 올렸다가 계정이 차단된 일로 불거졌기 때문이다.
당시 플로리다와 텍사스주는 소셜미디어의 자체적 게시물 삭제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빅테크가 반발하며 이 법의 유지 여부는 대법원이 결정짓게 됐다. NYT는 “온라인 시대 수정헌법 1조를 두고 벌이는 가장 중요한 재판”이라고 평했다.
● 다음 타깃은 AI… “빅테크 의존 우려해야”
“법엔 인공지능(AI)에 대한 예외 조항이 없다.”
‘빅테크 저승사자’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은 올 초 “(AI 기업들이) 혁신을 주장하며 위법을 숨기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FTC는 지난해 “아마존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부풀렸다”며 네 번째 반독점 소송을 걸었다. 이후 연말부터 AI 독점을 면밀히 살필 것임을 여러 차례 시사해 왔다.
실제로 빅테크 소송의 다음 타깃은 AI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독점과 중독, 허위 정보 등 빅테크 관련 소송의 모든 쟁점이 AI 분야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AI는 가공할 위력이 악용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도 넓다.
FTC와 유럽 당국은 MS나 구글의 AI 스타트업 투자에 위법이 없는지 조사에 나섰다. 각각 오픈AI와 앤스로픽에 투자해 독점적 지위를 강화했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다. 원래 기업 합병은 경쟁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오픈AI처럼 비영리법인 투자는 공시 의무가 없는 점을 노려 심사를 피했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칸 위원장도 “빅테크가 AI 신생 기업을 장악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언급했다.
AI 분야의 독점 가능성은 전문가들도 심각하게 우려하는 대목이다. 개발 비용이 커 진입장벽이 높은 데다 향후 어떤 영향력을 가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게리 마커스 뉴욕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최근 반도체 협력을 위해 중동에 다녀왔다”며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빅테크 경영진이 결정 내리는 건 정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에이미 라인하트 AP통신 AI 전략 수석도 올 초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의 AI 활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빅테크에 의존할 가능성”을 꼽았다. 라인하트 수석은 “언론사들이 구글 AI 툴에 적응할 무렵에 구글이 공급을 끊거나 비용을 올릴 가능성을 상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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