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건설·운영하는 컨벤션센터 14곳 가운데 10곳이 많게는 연간 수십억 원의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 지었지만, 수요 부족으로 가동률이 60%에도 미치지 못해 운영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마이스(MICE·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 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가 무색하게 돌잔치나 뷔페, 결혼식 등의 행사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있을 수 없다.
1700억 원을 들여 2021년 개관한 울산전시컨벤션센터는 가동률이 30% 수준에 그쳐 누적 적자가 50억 원이 넘었다. 가까운 부산과 경주에 이미 대형 컨벤션센터가 있는 상황에서 기업 행사 유치가 쉽지 않았다. 울산시는 센터를 키즈카페에라도 임대해 적자를 메우려고 최근 조례까지 바꿨다고 한다. 1200억 원 넘게 들인 창원컨벤션센터도 칠순잔치와 피로연 장소로 주로 쓰이다 보니 지역 상인들로부터 “혈세를 들여 민간 상권을 침해한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데도 지자체들은 컨벤션센터 증축이나 신축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는 1400억 원을 들여 제2전시장을 지으려다 공사비 인상으로 보류했다. 2000여억 원이 투입되는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는 다음 달 착공 예정이며, 전북 전주시도 3000억 원을 들여 신규 건립을 추진 중이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짓더니 이제 와서 제 살 깎기 경쟁을 하지 말자며 더는 짓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지자체도 있다.
상당수의 지역 사업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걸지만 실제론 지자체장의 과시와 치적 쌓기 용도인 경우가 많다. 장밋빛 전망으로 수요 예측을 부풀려 사업을 추진하지만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드물다. 한 지자체에서 성공하면 다른 곳에서 베끼면서 비슷한 사업이 널렸다. 전국 40여 곳에 케이블카가 있지만 90% 이상이 적자 상태다. 곳곳에 출렁다리와 모노레일이 넘쳐나고, 최초·최대·이색을 내건 랜드마크와 구조물이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서고 저출산 고령화로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같은 세금 낭비를 더는 내버려둬선 안 된다. 전문가와 지역 주민들이 지자체의 예산 낭비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사업 타당성을 제대로 검증하고, 지자체 간 과잉·중복투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혈세가 새는 곳을 틀어막아야 반드시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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