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가 ‘최초’ 타이틀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미국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인 8단 ‘HBM3E’ 양산에 돌입했습니다. 2분기(4∼6월) 출시될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된다”고 밝힌 게 시작입니다.
바로 그날 삼성전자는 8단보다 4개 층을 더 쌓아 처리 용량을 끌어올린 12단 HBM3E를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곧 SK하이닉스가 반격에 나섰습니다. 19일 “5세대 8단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이달 말 고객사에 납품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고객사는 엔비디아입니다. 마이크론은 다시 맞불을 놓았습니다. 20일(현지 시간) “지난 2분기(미국 기준 지난해 12월∼올해 2월) HBM3E에서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누가 최초 양산일까요?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모두 HBM3E 양산에 돌입한 건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마이크론이 초기 단계라면 SK하이닉스는 실제 제품 탑재를 위한 대량 양산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엔비디아도 대량 양산은 SK하이닉스가 최초라고 확인해 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 방식으로 따지면 SK하이닉스도 올 초부터 매출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초 싸움을 벌이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아직 메모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범용 시장은 회복이 더딘 가운데, 인공지능(AI)발 HBM 훈풍이 ‘반도체의 봄’을 이끌고 있습니다.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 방식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미세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자본을 대거 투자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고성능 반도체 시장에서는 선도적인 기술과 안정적인 수율(합격품 비율)을 바탕으로 고객사로부터의 신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최초 타이틀은 기선을 제압하는 데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급성장할 AI 시장에선 기술과 수율, 신뢰 등이 모두 완벽함에 다가가야 ‘최고’라는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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