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장장 62곳을 위성 사진으로 보면 그중 8할 이상이 오지에 있다. 주민 반발을 피하려고 멀리 경계 부근이나 벽지를 찾아 건립한 것이다. 벽제화장장이라고 불리는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위치도 예전엔 오지였다. 근래 새로 건립한 경북 울진군립추모원 화장장도 주변 몇 km 내에 민가가 거의 없는 벽지다. 휴대전화 통화가 되지 않아 공사 관계자들이 외부 연락에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화장장의 오지 입지는 몇 가지 문제를 안게 된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는 접근성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인프라도 완전히 새로 구축해야 한다. 꽤 긴 도로, 상하수도, 전기통신 시설에다 가스 설비 등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감당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오지를 찾다가 해당 시군의 경계선 가까이 가면 자칫 인접 지역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치게 된다. 경기 화성시는 인접한 수원 시민의 반대로 몇 년을 허송세월했다. 용인시와 안성시의 마찰, 전북 정읍시와 김제시의 마찰 등이 비슷한 사례이다. 경기 이천시는 여주시 지역의 반대로 끝내 입지를 철회해야만 했다.
필자는 30여 년 전 세계 화장장 입지를 살펴보았다. 그중 일본에서 좋은 화장장 입지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례도 다수 발견했다. 오사카부 돈다바야시 화장장은 체육공원과 더불어 건립된 곳이다. 이곳에는 정규 육상트랙이 있는 주 경기장, 야구장, 테니스장, 게이트볼장에다 어린이공원까지 갖춘 체육공원이 있다.
2018년에 문을 연 사이타마현 가와구치 화장장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붙어 있다. 그리고 지역 물산관, 역사 자료관, 키즈카페와 어린이공원, 일주 산책로를 가진 호수가 화장장을 감싸고 있다. 주민 휴식공원에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시설과 화장장을 결합한 것이다. 게다가 넓은 고속도로가 다른 지역과의 격리 기능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화장로 30기의 초대형 나고야 제2화장장은 대형 복합쇼핑몰이 따라 들어와 노선상업지역으로 변모했다. 땅값 하락은커녕 오히려 지역경제가 활성화한 것이다. 일본에는 고속도로나 고속철도 등이 지닌 지역 공간 격리 기능을 활용한 화장장 입지 사례도 흔히 찾을 수 있다. 의외의 장소가 화장장이 자리 잡게끔 활용된 케이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지역사회의 새로운 화장장 입지는 ‘주민 신청’ 사례가 대부분이다. 행정은 거의 손 놓고 있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화장장 입지를 찾는 과정에서 주민들로부터 신청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도 입지를 찾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물이 앞서 본 이런 사례들이라고 해도 좋다.
결론적으로 우린 주민들의 화장장 유치 신청이라는 기약 없는 왕도에 너무 매달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만 넓고 깊게 연구하면 첩경을 찾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눈과 귀를 열고 보다 더 좋은 화장장 입지를 빨리 더 많이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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