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신간을 내며 북 토크를 하던 도중 이런 질문 겸 감사 인사를 받았다. ‘중학교 도서관 사서입니다. 먼저 반지수 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요즘 아이들이 정말 책을 읽지 않습니다. 글로 된 책은 더욱 읽기 힘들어합니다. 코로나와 쇼트폼 시대 이후 더욱 심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반지수 님이 표지를 그린 책은 눈이 가서 그런지 아이들이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책을 많이 보지 않던 아이들도 시리즈처럼 책을 읽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아이들이 볼 만한 책을 쓰실 계획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나는 몇몇 베스트셀러의 표지를 그려 ‘책 표지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근 몇 년 사이 서점가에서 보이는 ‘∼∼상점’ 같은 특정 공간 주제 소설의 표지를 많이 그렸는데 요새 이런 비슷한 소설이 계속 나오는 데 대해 비판이 나온다고 들었다. 하나가 잘 팔리니까 콘셉트를 우후죽순 복사해 내는 것 아니냐,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등.
표지를 그리는 삽화가로서 비슷한 소설이 계속 나오는 것은 진작에 눈치챘다. 처음 몇 번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내가 다 작업할 수도 없을 만큼 제안이 쏟아지고 그중 다수가 비슷한 책인 것을 보며 나 역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 책 표지처럼 그려 주세요’라는 노골적인 제안을 받을 때도 있었다. 나에겐 ‘소중한 밥줄’이었지만, 독자 입장에서 새로운 책을 더 많이 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북 토크에서의 질문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글을 읽지 않던 아이들이 내가 그린 표지의 책을 찾아본다니. 비슷한 책 표지 주문이 이어진다며 걱정했던 내 생각은 기우일지도 몰랐다. 이런 비슷한 책과 책 표지의 붐은 어찌 보면 아쉽거나 걱정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하는 일일지도. 지금과 같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시대에, 어딘가 누군가는 그런 책을 많이 찾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보고 그래서 많이 팔린다는 것, 유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책이 많이 읽히고 있다는 것. 그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않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또 다른 책으로 관심이 넘어가 단단한 독자층이 될 수도 있다. 조사 결과 국민의 52%가 1년에 책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단군 이래 출판계에 한 번도 호황인 적이 없다는데, 그것이 무슨 이유든 사람들이 책을 들게 하고 사서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바꿔야겠다. 비슷비슷한 책이면 좀 어떤가. 나도 어릴 때는 나만의 시각이 없어 일단 남들이 보는 책, 우후죽순 유행하는 책을 보다가 점점 내 취향을 알아가며 책에 빠진 책순이가 된 것을. 어른이 되어 책을 오래 놓기도 했지만, 책 표지 작업을 하며 원고를 읽다가 다시 요즘 독서 삼매경이 되었다. 어딘가에선 아이들이 나의 삽화 덕에 점점 책과 친해지고 있다니. 도서관 현장의 사서 선생님 말씀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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