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나눔 현장에선 어떨까.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2023년 한 해 동안 8305억 원이 모였다. 특히 연말연시에 진행한 ‘희망 2024 나눔캠페인’에선 사랑의열매 25년 모금 역사상 최고 모금액인 4880억 원을 달성했다.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경기 둔화 상황에서도 기업을 중심으로 법인과 개인의 기부 참여가 어느 때보다 뜨겁고 적극적이었다. 이를 보면서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어떨 때는 맞지만, 어떨 때는 틀리다는 걸 느꼈다. 나눔 현장에서 활동하는 담당자로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궁금한 적이 적지 않다.
영어권에서 ‘자선 활동’을 뜻하는 단어는 ‘필랜스로피(philanthropy)’다. 이는 자신이 가진 가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우리 사회는 ‘주는 것’의 의미보다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과 가치 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이는 국내 모금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여름 수해가 났을 때 동아일보는 ‘수해 의연금품 모집’ 사고(社告)를 게재하며 수해이재 구호사업을 진행했다.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국민들의 나눔 운동으로 보충한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에 징병, 이주, 독립운동 등의 이유로 해외에 있던 재외국민 200만 명이 광복 후 국내로 귀환했는데 이로 인해 실업 빈곤 주택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때도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 등을 시작으로 민간이 중심이 돼 모금과 구호 활동을 실시했다. 1951년 11월 제정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보면 6·25전쟁 기간에도 천재지변으로 인한 구휼금품, 국방기자재 헌납, 상이군경을 위한 위문금품 등에서 국가재정 궁핍으로 인한 부족분을 민간의 기부금품으로 해결했다. 나라가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던 시절 국민들이 이렇게 민간이 주도하는 모금에 참여한 것은 ‘나누는 것’의 의미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광복과 6·25전쟁을 전후해 지원에 앞장선 미국은 물론 한국인들의 의료를 지원한 스웨덴과 앙카라학원을 설립하고 운영한 튀르키예의 사례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 의한 나눔의 선순환은 70년이 지나 국내에서 튀르키예 지진성금으로 모아진 145억 원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나눔은 사회를 위한 시민의 역할이고 공동체를 위한 모두의 가치다. 동시에 스스로를 위한 가치이자 에너지원도 된다. 고액 기부자로 가족 9명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박한길 애터미 회장은 사업으로 성공하기 전 젊은 월급쟁이 시절에도 반드시 수입의 10%를 기부했다. 그는 이런 행동이 “스스로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임을 일깨우고 모든 일상생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공하게 만들어줬다”고 회고한다. 기부철학의 기본은 ‘작더라도 가까운 곳에 지금부터’ 기부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가 가진 것이 적어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나눈다’는 기부 문화가 확산되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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