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뜸했던 대형 도심 집회가 봄철과 선거철을 맞아 줄줄이 열리면서 교통 체증과 소음 공해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갈등이 격화함에 따라 보수 진보 단체들이 세 과시를 위해 참석 인원을 수천 명으로 신고해놓고 실제로는 수백 명만 참가하거나 집회 소요 시간을 2∼3배 부풀려 신고하는 ‘뻥튀기 집회’가 고질화하는 추세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최근 2주간 ‘3000명 이상 참가하겠다’고 신고한 주요 집회 4곳의 현장을 확인한 결과 원래 신고했던 참석 인원과 집회 시간이 대강이라도 지켜진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북문 앞 한강대로에서 열린 보수 성향의 집회는 1만 명이 참가한다고 신고했으나 경찰이 추산한 실제 참가 인원은 70명, 주최 측 추산으로도 200명에 불과했다.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진보 성향 집회도 5000명이 참가한다고 신고했지만 경찰 추산 집회 규모는 700명, 주최 측 추산은 2000명이었다. 오지도 않을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차로 2, 3개를 수시간 동안 텅 비워놓아 애꿎은 시민들만 안 겪어도 될 불편을 겪게 된 셈이다.
집회 시간 부풀리기도 반복되고 있다. 무대 설치 등 집회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은 1∼2시간에 불과한데도 오후 3시부터 1시간 반가량 진행되는 집회를 위해 오전 10시부터 한다고 신고하는 식이다. 주변 교통이 필요 이상으로 장시간 통제되는 것이다. 집회 주최 측은 “사정상 못 나오는 인원까지 미리 파악하기는 어렵다”거나 “집회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되풀이되는 집회 인원과 시간 부풀리기는 고의적이거나 경찰력 낭비와 국민 불편은 아랑곳없다는 무책임한 처사일 뿐이다. 집회 규모나 소요 시간이 신고한 수치와 크게 차이 나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의 집회 문화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귀청을 찢는 듯한 집회 소음만 해도 규제가 느슨한 데다 그마저도 단속을 소홀히 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과거 불의한 권력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했던 집회와 시위에 관한 집단적인 기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 오래다. 평화적인 의사 표현을 위한 집회의 자유는 보장하되 과도한 소음과 욕설, 도로 점거로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균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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