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수십곳 사라져”…‘金사과’ 되풀이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예산서 사과농장 운영 70대 한숨
“산업단지 들어서며 30, 40곳 없어져
값 올라도 수익성 악화, 젊은층 기피”
정부, 노는 땅에 ‘스마트 과수원’ 검토

20일 정연순 충남 예산군 사과발전연구회장이 자신의 과수원에서 사과나무들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그는 “수입도 적고 빚까지 지다 보니 과수원들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며 “예전 방식으로는 관리가 안 돼 대신 사과나무를 키울 사람들에게 임대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산=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예전에는 한 개 면에 과수원이 30, 40곳은 됐어요. 그런데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거의 다 사라졌죠.”

20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정연순 예산군 사과발전연구회장(71)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3000평(약 9920㎡) 정도의 과수원을 하려면 땅값을 포함해 5억 원가량이 필요한데 젊은 사람들이 과수원을 하려고 그 돈을 들이겠냐”고 덧붙였다.

● “지난해 수입 20%가량 줄어”

최근 사과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농가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과수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상기후까지 겹치면서 ‘금(金)사과’가 만성적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커졌다. 꽃눈도 피지 않은 사과나무에 냉해 예방 영양제를 뿌리던 정 회장은 “과수원을 접고 밭으로 임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세 시간 가까이 과수원에 머물렀지만 가지치기를 하던 그의 아내 말고 다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과나무들 밑의 땅은 판 지 얼마 안 된 듯 주변과 색이 달랐다. 지열을 활용하고 땅이 어는 걸 막기 위해 갈아 둔 것이다. 올해도 개화가 평년보다 10여 일 빨라져 냉해가 예상된다. 그는 “올해도 수확량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나마 농장 규모가 크고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는데도 그의 수입은 지난해 20%가량 줄었다. 정 회장은 “예산에 사과 농가가 1500곳 정도 있는데 50여 농가만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팔 수 있는 사과 자체가 줄어드는 데다 인건비와 비싼 농기계도 문제다. 농기계값은 수천만 원을 웃돌고 최근 인건비도 치솟아 하루 인부를 쓰기도 부담스럽다. 정 회장은 “사과 꽃이 피고 이를 따낼 때 사과 농가에선 하루에 13만 원가량을 주고 15명 정도를 쓰기 때문에 인건비만 한 해에 2000만 원 정도 들어간다”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내가 더 일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사과를 1만 원에 팔면 최소 6000원은 손에 쥐었지만 지금은 그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 여의도 면적 3.5배 규모의 과수원 조성 지원

올해도 사과 생산량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는 신규 과수원 조성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과수화상병으로 재배를 못 하거나 일정 기간이 지났는데도 재배가 이뤄지지 않는 과수원 땅에 스마트 과수원을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가 신규 과수원 조성 지원에 나서는 건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처음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과수화상병으로 재배가 이뤄지지 않는 과수원 부지는 총 1164ha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 면적(약 2.9㎢)의 3.5배 규모다. 과수화상병은 사과와 배나무의 꽃, 잎, 가지, 열매 등이 불에 타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게 마르다가 죽는 병이다. 세균이 최소 3년까지 잠복하기 때문에 3년은 지나야 다시 나무를 심을 수 있다. 하지만 3년이 지났는데도 농사를 짓지 않는 땅도 상당하다. 다시 과수원을 하려고 돈을 들여 나무를 심는 게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점점 북쪽으로 올라오는 만큼 새로운 땅에 과수원을 열어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과수원을 하던 땅에 과수원을 해야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존 품종과 달리 개화 시기가 늦어 냉해에 강한 사과, 배 품종들의 보급도 지원할 방침이다.

#과수원#금사과#스마트 과수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