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한 개 면에 과수원이 30, 40곳은 됐어요. 그런데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거의 다 사라졌죠.”
20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정연순 예산군 사과발전연구회장(71)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3000평(약 9920㎡) 정도의 과수원을 하려면 땅값을 포함해 5억 원가량이 필요한데 젊은 사람들이 과수원을 하려고 그 돈을 들이겠냐”고 덧붙였다.
● “지난해 수입 20%가량 줄어”
최근 사과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농가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과수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상기후까지 겹치면서 ‘금(金)사과’가 만성적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커졌다. 꽃눈도 피지 않은 사과나무에 냉해 예방 영양제를 뿌리던 정 회장은 “과수원을 접고 밭으로 임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세 시간 가까이 과수원에 머물렀지만 가지치기를 하던 그의 아내 말고 다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과나무들 밑의 땅은 판 지 얼마 안 된 듯 주변과 색이 달랐다. 지열을 활용하고 땅이 어는 걸 막기 위해 갈아 둔 것이다. 올해도 개화가 평년보다 10여 일 빨라져 냉해가 예상된다. 그는 “올해도 수확량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나마 농장 규모가 크고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는데도 그의 수입은 지난해 20%가량 줄었다. 정 회장은 “예산에 사과 농가가 1500곳 정도 있는데 50여 농가만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팔 수 있는 사과 자체가 줄어드는 데다 인건비와 비싼 농기계도 문제다. 농기계값은 수천만 원을 웃돌고 최근 인건비도 치솟아 하루 인부를 쓰기도 부담스럽다. 정 회장은 “사과 꽃이 피고 이를 따낼 때 사과 농가에선 하루에 13만 원가량을 주고 15명 정도를 쓰기 때문에 인건비만 한 해에 2000만 원 정도 들어간다”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내가 더 일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사과를 1만 원에 팔면 최소 6000원은 손에 쥐었지만 지금은 그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 여의도 면적 3.5배 규모의 과수원 조성 지원
올해도 사과 생산량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는 신규 과수원 조성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과수화상병으로 재배를 못 하거나 일정 기간이 지났는데도 재배가 이뤄지지 않는 과수원 땅에 스마트 과수원을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가 신규 과수원 조성 지원에 나서는 건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처음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과수화상병으로 재배가 이뤄지지 않는 과수원 부지는 총 1164ha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 면적(약 2.9㎢)의 3.5배 규모다. 과수화상병은 사과와 배나무의 꽃, 잎, 가지, 열매 등이 불에 타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게 마르다가 죽는 병이다. 세균이 최소 3년까지 잠복하기 때문에 3년은 지나야 다시 나무를 심을 수 있다. 하지만 3년이 지났는데도 농사를 짓지 않는 땅도 상당하다. 다시 과수원을 하려고 돈을 들여 나무를 심는 게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점점 북쪽으로 올라오는 만큼 새로운 땅에 과수원을 열어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과수원을 하던 땅에 과수원을 해야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존 품종과 달리 개화 시기가 늦어 냉해에 강한 사과, 배 품종들의 보급도 지원할 방침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