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에 배 가둬 북극까지 이동… ‘모자익 원정대’ 330일 탐험기
‘극야’ 속 얼음판 위 축구 경기… 북극곰과의 만남 등 이색 경험
코앞까지 닥친 기후 위기 경고… “여름 해빙 곧 사라지게 될 수도”
◇북극에서 얼어붙다/마르쿠스 렉스 지음·오공훈 옮김/420쪽·3만2000원·동아시아
북극의 중심으로 가려면 얼음 속에 갇히면 된다.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1861∼1930)이 일찍이 1893년 시도한 일이었다. 그린란드로 떠내려 온 난파선을 보고 유빙이 컨베이어벨트처럼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난센은 함선 프람호와 함께 시베리아 연안에서 얼음에 갇혔다. 얼음과 함께 북극 중심부를 통과한 프람호는 북대서양까지 밀려갔고 탐험대는 전원 귀환했다.
126년 뒤인 2019년 9월, 한국을 포함한 37개국의 전문가가 참여한 탐험대가 난센의 경로를 따라갔다. 시베리아 북쪽 바다에서 얼음 속에 갇힌 폴라르슈테른(북극성)호와 원정대는 북극점을 거치는 330일간의 탐험을 마친 뒤 귀환했다. 이 책은 이 탐험을 수행한 ‘모자익 원정대’ 대장이자 독일 헬름홀츠 극지해양연구센터 대기연구 책임자인 저자가 써내려간 열한 달의 기록이다.
원정의 목적은 북극 기후의 상세 데이터 수집이다. 30년 전부터 저자에게 익숙한 그린란드 북동쪽 바다는 이제 한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다. 오늘날 북극의 기온 상승은 인간 거주지역보다 두 배나 빠르다. 북극권 한복판의 연평균 기온이 영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는 차라리 충격적이다. 햇빛을 우주로 반사할 얼음이 줄면 지구가 더 더워지고 얼음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얼음에 갇힌 원정대의 활동 공간은 폴라르슈테른호를 훨씬 넘는다. 대기 성분과 기류 등을 측정하는 ‘기상학 도시’가 얼음 위로 넓게 펼쳐지고, 얼음 아래를 탐구하는 사이트와 먼 곳을 탐지하는 원격 탐사 사이트 등이 곳곳에 자리한다. 이들이 자리 잡은 얼음이 견고할 것 같지만 얼음이 갈라지는 바람에 애써 설치한 장비들을 잃기도 했다.
얼음 위의 생활이 마냥 지루한 것만은 아니다. 탁구 경기와 ‘몸무게 재기 클럽’ 같은 심심풀이 행사가 열리고, 파티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해가 뜨지 않는 겨울날 얼음판 위에서의 축구는 대형 조명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북극곰은 볼거리이자 위협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탐사 장비의 케이블을 물어뜯기도 한다. 이들의 생태에 영향을 덜 주면서 멀리 쫓아내는 일도 원정대의 큰 숙제다.
저자는 탐험 중반이 지난해 12월 추가 원정대 관리를 위해 육지로 되돌아갔다가 3월에 폴라르슈테른호로 복귀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보급에 난관이 닥쳤다. 쉽지 않았던 팬데믹 상황의 극복기도 책 후반부의 큰 부분을 이룬다. 보급과 교대를 위해 저자를 포함한 몇몇 인원이 팬데믹 지역에서 폴라르슈테른호로 이동했지만 다행히 감염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원정대는 예전보다 훨씬 빨리 녹는 북극 유빙의 생생한 실상을 눈으로 확인한다. 기온 측정치도 난센이 기록한 것보다 5도에서 10도까지 높았다. 하지만 원정의 끝이 연구의 끝은 아니다. 수많은 측정치를 컴퓨터에 입력해 북극 기후 시스템의 복잡한 과정을 분석하는 일이 남았다.
저자는 인류 전체를 향한 경고로 책을 닫는다. “지구 기후시스템에는 다양한 티핑 포인트(한계점)가 있다. 인간이 티핑 포인트를 촉발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고갯길을 넘어가는 상황, 북극에서 여름 해빙이 사라져버리는 상황이 임박했다. 어쩌면 우리는 고갯길을 넘어 급경사진 오솔길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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