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 이용한 ‘일화 기억’ 연구
美 컬럼비아대 신경과학과 연구팀, 뇌의 단기기억 저장 방법 분석
박새, 음식 저장-회수 활동할 때,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의 7% 사용
일시적으로 독특한 신경패턴 형성…‘바코드’처럼 별도의 패턴 나타나
“형성 메커니즘 등 추가실험 필요”
특정한 순간을 머릿속에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일은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출근할 때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를 떠올리면 된다. 뇌에서 일시적인 기억들이 어떻게 저장되고 회수되는지는 과학자들의 오랜 관심사였다.
드미트리 아로노프 미국 컬럼비아대 신경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새의 한 종류인 박새가 어떻게 음식을 저장하고 회수하는지를 분석하고 일시적인 기억들이 뇌에서 독특한 신경 바코드 형태로 저장된다는 점을 알아냈다. 연구 결과는 3월 30일 국제학술지 셀에 공개됐다.
● ‘일화 기억’ 형성에 해마 세포 7% 사용
개인의 특정한 일화에 대한 기억으로 구체적인 시간, 장소, 감정 등과 관련한 사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을 ‘일화 기억’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뇌의 해마 부위가 일화 기억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일화 기억이 정확히 어떻게 뇌에서 암호화되는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언제, 어떤 일화 기억을 떠올리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음식을 저장했다가 나중에 회수하는 특성이 있는 박새에 주목했다. 저장한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음식을 저장한 장소나 저장 당시 감정 상태 등에 대한 일화 기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연구팀은 박새들이 먹이를 저장하고 찾는 행동을 하는 동안 일화 기억과 관련한 뇌 활동이 일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박새들이 먹이를 저장하고 회수할 때의 행동과 뇌 패턴을 추적하기 위해 음식을 은닉할 수 있는 장소들로 이뤄진 공간을 설계했다. 그런 뒤 이 공간에 박새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하고 뇌의 조밀한 신경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적용했다.
실험 결과 박새가 음식을 특정 장소에 숨기는 활동을 하는 동안 해마의 신경세포에서 일시적으로 독특한 신경 패턴이 형성됐다. 같은 장소에 저장된 음식을 회수할 때도 정확히 같은 패턴이 활성화됐다. 아로노프 교수는 “각각의 음식 저장고는 박새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순간을 관찰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이전에 살펴볼 수 없었던 기억 관련 활동 패턴을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박새가 음식 저장 활동을 할 때 뇌 영역인 해마에서 일어나는 신경 패턴을 ‘바코드’라고 이름 붙였다. 바로 옆에 놓인 상품도 별개의 바코드를 인식해야 하는 것처럼 바로 근처에 있는 음식 저장고를 떠올릴 때 각기 다른 별도의 신경 활성 패턴을 보였기 때문이다. 각 바코드는 해마에 있는 세포의 약 7%를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음식 저장고 하나를 만들 때 신경세포의 약 7%가 반응했고 또 다른 저장고를 만들 땐 다른 신경세포의 7%가 반응했다.
● ‘장소 세포’보다 ‘바코드’ 패턴과 밀접하게 연관
연구팀의 분석 결과 각 바코드는 ‘장소 세포’와 함께 활성화됐다. 장소 세포는 특정 위치에 반응해 활성화되는 해마에 위치한 세포로 공간을 지각하는 능력을 담당한다. 박새가 음식 저장고 근처로 갈 때 장소 세포의 반응은 특별히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음식 저장고와 관련한 박새의 일화 기억은 장소 세포보다는 바코드 형태의 뇌 활동 패턴과 보다 밀접한 연관성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해마의 바코드를 컴퓨터 해시 코드에 비유했다. 컴퓨터 해시 코드는 임의의 데이터를 고정된 크기의 값으로 변환하는 것으로 같은 입력에 대해 항상 동일한 해시 코드를 생성한다. 연구팀은 각각의 일화 기억이 빠르게 저장되려면 해시 코드처럼 각 기억을 식별할 수 있는 바코드 형성 메커니즘이 필요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팀의 미해결 과제는 바코드가 행동을 유도할 때도 사용되는지다. 아로노프 교수는 “박새가 어디로 갈지 결정할 때 바코드를 활성화하는지는 불분명하다”며 “새들이 어떤 음식 저장고에 방문할지 선택할 때 어떠한 뇌 활동이 발생하는지 살필 수 있는 추가적인 실험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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