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반도체 수출이 1년 전보다 35% 넘게 늘어나며 1년 9개월 만에 최대치를 보였다.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살아나면서 전체 수출은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내수 위축에도 불구하고 한국 수출이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3.1% 늘어난 565억6000만 달러(약 76조3000억 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3월보다 조업 일수가 1.5일 줄었는데도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수출 증가세가 6개월 연속 이어졌다. 조업 일수를 반영한 하루 평균 수출액은 25억1000만 달러로 9.9% 늘었다. 지난해 10월까지 부진했던 반도체 수출이 크게 늘며 전체 수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17억 달러로 전년보다 35.7% 증가했다. 2022년 6월(123억 달러) 이후 21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수입은 522억8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2.3% 줄면서 무역수지는 42억8000만 달러 흑자였다. 월간 무역수지는 지난해 6월 이후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출과 무역수지가 좋아지는 흐름”이라며 “내수 위축 등이 여전히 경기를 억누르고 있지만 하반기(7∼12월)엔 물가가 안정세로 접어들면 전반적으로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4대 IT 품목’ 수출 모두 증가… 고물가에 내수 침체는 여전
반도체, AI 수요 늘며 견고한 흐름 디스플레이 16.2%, 컴퓨터 24.5%↑ 對中 수출도 한달만에 다시 증가세 “고물가 해소돼야 내수 회복 가능”
지난달 반도체 수출이 크게 늘어난 건 인공지능(AI) 산업이 커지면서 반도체 수요도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PC와 휴대전화 등 반도체 전방산업도 회복 흐름을 보이며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수출이 모두 늘었다.
한국 수출의 주요 축인 대(對)중 수출도 한 달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가운데 대미 수출은 역대 3월 기준으로 최대치를 다시 썼다. 다만 수출이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내수는 여전히 온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주력 기업들이 수출 호조로 실적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에는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 ‘4대 IT 품목’ 수출 일제히 반등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세부 품목 중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74억5000만 달러(약 10조500억 원)로 1년 전보다 63.0% 늘었다. 시스템 반도체도 4.6%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는 가격과 수요가 함께 오르고 있다. 낸드 가격은 지난달 평균 4.9달러로 지난해 12월(4.3달러) 전년 동월 대비로 상승 전환한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D램 가격은 지난해 9월 1.3달러로 바닥을 찍은 뒤 올해 들어 1.8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이 AI 투자를 늘리며 반도체 수요는 당분간 좋은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디스플레이 수출도 1년 전보다 16.2% 늘었다. 애플의 신형 아이패드 출시가 다음 달로 다가오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수출이 늘었고, 차량용 디스플레이 수요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밖에 컴퓨터와 무선통신기기도 수요 회복에 힘입어 24.5%, 5.5% 늘었다. 반도체를 포함한 4대 IT 품목의 수출이 일제히 호조를 보인 것이다. 4대 IT 품목이 모두 증가한 건 24개월 만에 처음이다. 다만 자동차 수출은 5.0% 줄었다. 지난해 3월 자동차 수출이 크게 증가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컸다.
대미 수출은 1년 전보다 11.6% 늘어난 109억 달러로 8개월 연속 증가 흐름을 이어갔다. 역대 3월 기준 최대 수출액을 새로 썼다. 지난달 25일까지 대미 품목별 수출을 보면 반도체가 1년 전보다 219.1% 늘며 상승세를 이끌었고 자동차와 기계 역시 각각 8.6%, 41.0% 늘었다. 대중 수출은 1년 전보다 0.4% 늘어난 105억 달러였다. 올 1월 대중 수출은 20개월 만에 전년보다 증가했지만 2월에는 2.4% 줄며 마이너스(―)를 보였다.
● 고물가 고금리에 내수 침체는 여전
수출이 6개월 연속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며 아직 내수 경기는 살아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3.1% 줄어 지난해 7월(―3.1%)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물가가 먼저 잡혀야 본격적인 내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내수 침체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기 때문이고, 고금리의 이면에는 고물가가 있다”며 “고물가가 해소되지 않는 이상 금리를 낮춰 내수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농축산물과 에너지를 중심으로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어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1% 올라 전월(2.8%)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농산물, 에너지 변동이 줄면 하반기(7∼12월) 물가는 2% 초중반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물가는 한 번 오르면 탄력이 있기 때문에 전월 수준인 3% 초반을 넘어서면 2%대 물가가 예상보다 늦게 다가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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