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 외곽 지역에 있는 프라이징 숲에서 만난 20대 루카 카파운 씨는 “산림 자격증을 따면 산림 대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체코와 인접한 국경도시 노인부르크포름발트의 산림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숲에서 3년간의 실습 과정을 밟고 있다. 하루 8시간씩 통나무의 잔가지를 쳐내고 병충해나 강풍으로 파손된 나무를 정리하는 등 숲을 관리한다.
카파운 씨 등 10, 20대 세 명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울창한 나무 2, 3m 높이에 각각 로빈후드처럼 매달려 있었다. 안전 장비를 찬 채 팔뚝만 한 칼로 나무의 잔가지를 잘라내면 잔가지들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1주간의 직업탐색 실습 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15세 마르쿠스 마이어 군은 “숲은 항상 꼭 필요하고 기후변화가 중시되니 숲 전문가는 전망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숲은 광활한 ‘미래 일터’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임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었다. 관련 기업은 11만5000곳, 기업들의 매출은 1830억 유로(약 267조 원)다. 독일은 산림 관리를 위해 2021년 ‘숲 전략 2050’ 정책을 마련해 일자리뿐 아니라 다양한 목재 등 임산물을 생산하는 등 ‘숲 이코노미’를 키우고 있다.
獨, 온난화에 나무 79% 훼손… 2050년 ‘기후 스마트숲’으로 전환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5〉독일의 ‘숲 이코노미’ 獨영토 32%가 숲, 식물 2892종 서식… 각종 임산물에 수출용 통나무 생산 가공-제지 등 관련 일자리 100만개 고온-가뭄 등에 나무 고사비율 최고… ‘숲 전략 2050’ 세워 수종 세대교체
“올해 봄이 유독 일찍 시작됐어요. 기후변화로 봄이 더 더워졌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프라이징 숲. 친구들과 산책하던 슈테판 츠바크 씨는 3월 말인데도 더워진 날씨에 그늘에서 잠시 휴식하며 이같이 말했다. 방문객들은 두꺼운 점퍼 대신 얇은 외투만 입은 채 숲속을 거닐었다. 따사로워진 햇볕을 피해 주차장 차량이나 안내소 그늘에 멈춘 방문객들이 보였다. 츠바크 씨는 “숲은 탄소를 빨아들이고 그늘을 만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해주는데, 요즘 온난화와 가뭄 등으로 많이 훼손돼서 더욱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의 매일 이 숲을 찾는 요제프 마이어 씨는 벌써부터 올여름 무더위를 걱정하며 “날씨가 아주 더울 때도 숲은 시원하고 공기의 질이 좋다”며 “요즘 온난화로 벌레가 늘어 나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숲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은 기후변화 시대에 숲의 소중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숲 덕에 공기의 질이 개선되고 더위를 덜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에른주는 전체 면적의 37%인 260만 ha가 숲이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산림 면적이 가장 넓어 ‘독일의 허파’ 역할을 한다.
● 숲은 탄소 흡수망이자 자원
독일 영토에서 약 32%를 차지하는 숲에는 다양한 식물 2892종이 서식한다. 숲에 뿌리내린 다양한 식물들은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탄소 흡수망’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산하 신재생연료전문기관에 따르면 숲은 이산화탄소를 연평균 5200만 t씩 흡수하고 있다. 프라이징 숲을 관리하고 있는 헤르베르트 보어헤르트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LWF) 박사는 “숲은 홍수를 방지하고 이상고온을 완화해주는 등 기후변화 시대에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숲은 탄소 저감뿐 아니라 임산물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통계를 보면 독일 목재 재고량은 2017년에 ha당 358m³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독일에서 숲은 자원의 보고인 셈이다. 특히 건축 및 가구 자재 등에 쓰이는 통나무는 독일의 주요 자원이다. 이날 프라이징 숲속 곳곳엔 단면이 대형 트럭 바퀴만 한 통나무들이 잘린 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독일 연방정부에 따르면 2022년 독일이 수출한 통나무는 수입량보다 400만 m³ 더 많았다. 통나무 대부분은 중국으로 수출된다.
공공 기관인 LWF는 물론이고 민간 주거 지역에서도 목재 건축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목재 산업은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돼 정부의 지원 속에 성장하고 있다. 건물 자재로 쓰이는 시멘트나 철강은 제작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된다. 반면 목재는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데다, 탄소를 30년가량 저장한다. 바이에른주 주택의 21%가 목재로 건설된다. 독일 연방정부는 “가공, 제지, 인쇄 및 출판을 포함한 산림 및 목재 산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는다”고 밝혔다. 숲에서 직접 일하는 직업(4%)을 포함해 인쇄 및 출판(30%), 목재 건설(24%) 등 다양한 관련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임업 관련 기업 매출만 1830억 유로(약 267조 원)에 달할 정도로 ‘숲 이코노미’가 뿌리내렸다.
● 기후변화 위기, ‘숲 전략 2050’으로 대응
다만 독일의 숲도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과 가뭄, 병충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 조사 결과 2022년 기준 독일 전역의 나무 79%가 손상되거나 죽고 있다. 환경 전문 저널인 ‘글로벌 변화생물학’은 1953∼2020년 68년간 독일 숲을 연구해 보니 나무의 고사 비율이 1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저널은 “건조하고 더운 기후가 광합성, 호흡 등 나무의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곤충, 곰팡이와 서리 및 가뭄 등 외부 요인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11년 산림을 관리하기 위한 ‘숲 전략 2020’을 세웠다. 기후변화 대응, 숲과 생물다양성 보호, 목재 활용, 스포츠 및 여가 장소 활용 방안 등을 총망라한 대책이다. 10년 뒤인 2021년엔 이를 발전시킨 ‘숲 전략 2050’을 마련했다. 비영리단체 괴테연구소에 따르면 정부는 이 정책을 바탕으로 전국 산림 중 270만 ha를 기후변화에 강한 나무로 바꿔 심고 관리하는 ‘기후 스마트 숲’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정책에 참여하는 산림 관리자들에게는 15억 유로(약 2조2000억 원)를 지급한다.
전문가들은 숲의 수종 교체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어헤르트 박사는 “정부는 기후변화에 맞춰 숲을 세대교체해야 한다”며 “나무 종을 요즘 환경에 맞도록 서둘러 바꾸지 않으면 숲이 위험해 처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숲의 위기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분석 결과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1년 치를 줄이려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토를 합한 면적 이상의 숲을 재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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