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전망 및 정부 정책 수립의 기초가 되는 주택 공급 실적이 지난해 실제보다 19만2000채 적게 집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이 같은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지난해 9·26공급대책, 올해 1·10부동산대책 등을 수립해 발표했다. 정부 정책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7∼12월 시스템 오류로 재개발·재건축과 300채 이상 주상복합이 주택 공급 실적 통계에서 누락됐다. 지난해 9월에는 사업자 정보가 변경된 주택이 준공 통계에서 빠지는 오류까지 발생했다. 국토부는 이를 올해 1월 말 인지해 약 3개월 동안 전수조사 등 오류 정정 작업을 벌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주택 준공 물량은 기존 발표(31만6415채)보다 37.8%(11만9640채) 늘어난 43만6055채로 정정됐다. 특히 도심 정비사업이 집중돼 있는 서울은 실제 준공 물량이 4만1218채로 오류를 정정하기 전(2만7277채)보다 51.1%(1만3941채) 많았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채) 크기 단지가 통째로 통계에서 빠진 셈이다.
인허가(38만8891채→42만8744채)와 착공 물량(20만9351채→24만2188채)도 각각 10.2%, 15.7% 증가했다. 총 누락 물량은 19만2330채로 분당신도시(9만7600채)와 일산신도시(6만9000채)를 합한 16만6600채보다 많다.
분당+일산보다 많은 19만채 통계 누락, 준공 증가를 감소로 발표
잘못된 통계 근거로 삼은 국토부 작년 준공실적 오류 정정 결과 ‘감소 아닌 증가’ 180도 바뀌어 정부 부동산정책 신뢰도에 타격
한국부동산원 집값 통계 조작 의혹에 이어 주택 공급 실적이 통계에서 무더기로 누락되는 일이 발생하며 정부의 부동산 통계 신뢰 문제가 도마에 오르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단순한 ‘데이터 누락’이라고 밝혔지만, 그 규모만 19만 채가 넘는 데다 이미 해당 통계를 근거로 대책까지 마련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 지난해 준공 늘었는데 ‘감소’로 발표
30일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 통계 오류는 주택공급 데이터베이스(DB) 체계 개편 과정에서 발생했다. 국토부는 기존에 주택공급통계정보시스템(HIS)과 세움터(건축행정정보시스템)를 직접 연계해 통계를 생산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인허가·착공·준공 통계 수치를 세움터에 입력하면 이를 HIS로 끌어오는 식이다.
이 체계는 전자정부법 개정으로 지난해 7월부터 세움터와 HIS를 직접 연계하지 않고, 중간에 ‘국가기준데이터 관리시스템’을 경유하도록 바뀌었다. 이때 국가기준데이터 관리시스템에서 HIS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물량과 300채 이상 주상복합이 빠지는 오류가 발생했다.
지난해 9월에는 HIS 기능 개선 작업 도중 시스템 버그로 주택 공급을 하는 사업자가 중간에 변경될 경우 해당 주택이 준공 실적에서 누락되는 오류까지 생겼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 1월 말 공급 실적이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큰 폭으로 줄어든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고, 지자체와의 협의 과정에서 숫자가 다르다는 걸 알게 돼 2월부터 전수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작년 준공 실적은 이번에 정정하기 전까지는 31만6415채였다. 전년(41만3798채) 대비 23.5%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오류를 잡고 나니 작년에 준공된 주택은 43만6055채로 전년 대비 오히려 5.4% 늘어났다.
국토부의 늑장 대처에 대한 비판도 있다. 지난해 7월 시스템을 개편한 뒤 반년 이상이 지나도록 통계의 정확성을 검증하지 않았고, 오류를 발견하고도 정정하는 데 석 달이나 걸렸다는 점에서다. 그 사이 발표된 1월(2월 말 발표)과 2월(3월 말 발표) 주택통계 자료 역시 오류가 있는 공급 통계(2023년 인허가·착공·준공 물량)를 그대로 활용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1월 말 이후 전수조사 과정을 거치느라 1월과 2월 주택 통계는 수치를 수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 틀린 통계 기반의 공급 대책 내놔
국토부가 지난해 내놓은 ‘9·26 공급 대책’과 올 초 ‘1·10 부동산 대책’은 모두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9·26 공급 대책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급 여건이 악화되면서 단기적으로 주택 공급이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1·10대책에서는 “작년 주택 공급의 선행 지표인 인허가, 착공이 위축됐으며 그중에서도 연립·다세대 등은 더욱 크게 감소했다”고 봤다. 이런 진단의 근거가 모두 틀린 통계치였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두 차례 큰 대책을 내놓으면서 통계 오류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시장이 관망세가 아니라 변동성이 커지는 변곡점이었다면 시장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었다”고 했다.
국토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당장 공급 위축이라는 시장 상황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공급 확대 정책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날 “공급 실적이 과소 집계됐더라도 경향은 기존과 변화가 없다”며 “인허가는 통계 정정 전에는 전년보다 26% 줄지만 정정 후에는 18%가 줄어드는데, 정책 방향성을 바꿀 정도의 큰 차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의 엇박자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영향이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공급 실적은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사업자나 수요자들도 사업 추진, 매수 결정 등에 활용하는 통계”라며 “오류가 발생하면 향후 수급 불안이나 정책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통계 수치에 기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신뢰도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