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휴식(休食)이 있는 먹케이션 ‘고마워, 할매 ’로 초대합니다” [그 마을엔 청년이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8일 12시 00분


지방 소멸에 맞서는 청년들의 이야기-2회
함양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 박세원 대표

5월 5일 일요일 어린이날 정오 경남 함양군 삼휴마을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의 어버이날 잔치가 열렸다. 전체 25가구의 작은 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마을주민 2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엔 특별한 손님이 함께했다. 손녀뻘 되는 ‘숲속언니들’ 농업회사법인 박세원 대표(29) 등 직원 4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2022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함양군 수동면, 병곡면 등 4개의 마을에서 활동했지만 ‘마을의 일원’으로서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을 이장님은 이참에 “어르신들게 사업을 소개해보라”고 기회를 줬다.

‘숲속언니들’ 김승현 씨가 5월 5일 함양 삼휴마을 어르신들에게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박세원 대표 제공


“저희는 도시 청년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로컬, 음식, 휴식을 경험하도록 돕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은 지역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로컬푸드와 식문화를 알아가고, 진정한 쉼을 찾아가죠. 앞으로 많은 청년이 마을에 방문해 하루에서 사흘 정도 머물 예정이에요. 인사도 잘 받아주시고 손녀처럼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박 대표가 이끄는 ‘숲속언니들’은 함양 할머니들의 음식 레시피를 활용한 지역살이로 출범했다. 이후 함양 삼휴마을 단양댁 할머니, 진해댁 할머니, 도천댁 할머니, 대천댁 할머니의 대대로 물려받은 레시피를 전수받아 향토 음식 만들기 교육이나 팝업식당 운영, 밀키트 기획 및 배송 등의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시켰다. 2년 동안 할머니와 청년 여성들이 협업한 결과 향토 음식 사업만으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3년차인 올해 도시 청년들의 지역살이 프로그램으로 사업의 큰 방향을 다시 돌렸다. 군에서 빌려 쓰던 읍내 사무실을 정리하고 삼휴마을 내에 새 사무실과 도시 청년을 위한 숙소를 마련했다. 손실댁 할머니와 진해댁 할머니가 개인 사정으로 빈집이 된 자신들의 집 한 채씩을 저렴한 세로 내주었다. 사무실과 텃밭을 손보고 숙소를 리모델링해 5월 15일 부처님오신날을 시작으로 손님맞이를 시작했다.

박세원 대표가 5월 5일 새로 마련한 방문자 숙소를 소개하고 있다. 함양=신석호 기자


‘숲속언니들’은 지역살이로 식사를 뜻하는 먹(食)과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의 합성어인 ‘먹(食)케이션’을 내세웠다. 휴가지에서 로컬, 음식, 휴식을 경험할 수 있는 시즌별 프로그램 ‘먹케이션 - 봄 이야기’는 5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운영된다. 1인당 하루 8만 원의 숙박비이며 현재 6월까지 총 50여 명이 SNS 등을 보고 예약했다.

방문객은 숙소와 함께 함양 할매 레시피로 만든 요리와 직접 키우고 수확한 제철 식재료로 가득 찬 아침 식사를 제공 받았다. 그 외 다양한 유료 프로그램들도 시골살이의 맛을 느끼게 해줬다. 할머니가 가꾸는 텃밭에서 제철 채소 ‘서리’하기, 할머니댁에서 요가 배우기, 시골 마을 풍경 그리기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을 신청해 즐겼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 조모 씨는 “숙소도 너무 좋고, 푹 쉬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킬포(킬링포인트)가 많아서 뭐가 제일 좋았는지 쓰기도 어렵네요! 고마워, 할매 먹케이션이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함양 지역 향토 음식뿐만 아니라 로컬, 휴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확장시켰습니다. 방문하는 분들은 바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마을과 어르신들은 고령화로 비어있는 집들을 활용하면서 도시 청년들과 소통할 기회를 갖게 되는 거지요.” (박 대표)

할매밥상을 함께 먹으며 식구가 된 ‘숲속언니들’ 과 참여자들. 박세원 대표 제공


‘숲속언니들’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박 대표가 이끄는 사업의 참여자들은 모두 여성이다. 4명의 회사 직원도, 여기에 참여하는 함양 어르신들도, 지역살이 체험 대상자도 49세 이하 여성들로 제한된다. 박 대표가 이 길로 뛰어든 것도 전통장류기능보유자인 어머니 김청희 씨의 힘이 컸다. 창원에서 태어나 문화콘텐츠학과를 전공한 박 대표는 2020년 함양에 사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전통장류를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것부터 함께 사업을 키워나갔다.

“할머니들과 어머니, 그리고 손녀이자 딸뻘인 청년들이 서로 협업하며 지역을 살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1인 가구 시대에 3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경험이기도 하구요.”

‘고마워, 할매’ 포스터에 등장한 단양댁 할머니. 박세원 대표 제공
무엇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할머니들의 도시 손녀 손자들이 고마워한다. 홍보담당인 김승현 씨는 “사업을 홍보하는 SNS에 단양댁 할머니와 함께 하는 사진과 글을 올렸더니 타지에 사는 친손녀가 ‘손주들이 해야 할 일인데 대신 함께 해주셔서 고마워요’라는 댓글을 달았을 때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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