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상갈등 방지, ‘CUES’에서 답을 찾다[기고/양희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3일 22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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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시계(視界) 제로. 작금의 국제관계를 이보다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국제사회의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다극화, 이 틈을 재빠르게 파고드는 북한의 핵 위협은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다. 우리나라 안보도 낙관할 수 없게 됐다. 국제적 충돌과 균열의 진동은 한반도 안보 환경에 언제든지 ‘퍼펙트 스톰’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만큼 한반도에 맞는 안보 구도와 생존 전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여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2018년 해군(광개토대왕함)이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일본 해상초계기와 갈등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일본은 자국 초계기가 한국 함정으로부터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照射)받았다고 주장했고, 한국은 초계기의 근접 위협 비행이 문제라고 반박하며 갈등으로 번졌다.

국제법은 양국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질 만큼 명료하지 않다. 일본은 당시 우리 해군의 레이저 조준이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이 규정한 “무력 행사의 금지” 위반이고, 초계기의 근접 비행은 제51조가 규정한 자위권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듯하다. 각국의 교전규칙과 국제사례를 보면 “적대 의도가 표출된” 경우에 대한 현장 무력 대응이 아주 불가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51조는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 한시적으로 행사되는 권한이다. 동해 초계기 사건에서 우리 측의 레이더 조사는 없었고 적대 의도도 없었다. 그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재발할 경우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분쟁을 피할 수 없다. 양국의 해상규칙이 필요한 이유다.

마침 한국 국방부와 일본 방위성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1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함정·항공기의 안전한 운용 보장을 위한 합의안을 도출했다.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조치다. 5년 묵은 초계기 분쟁의 봉합이고, 양국의 우발적 충돌 상황을 적극 관리하려는 국방 교류 활성화라는 점에서도 기대된다. 양국의 합의는 해상 충돌을 줄이기 위해 제정된 ‘해상에서의 우발적 조우 시 신호규칙’(CUES·Code for Unplanned Encounters at Sea)에 근거를 두고 있다. CUES는 서태평양 해군심포지엄이 2014년 만장일치로 채택한 국제규범이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등이 참여했다. CUES는 해군 함정과 항공기 등이 조우 시 적용할 표준절차를 마련하여 우발적인 해상 충돌을 방지하도록 했다. 올해 개정된 CUES에는 함정과 항공기 간의 충분한 안전거리와 고도를 유지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한일 양국의 함정·항공기가 상호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 모두 담겼다.

CUES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러나 이번 한일 합의로 CUES는 양국에 매우 강력한 준수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됐다. 함정·항공기 간 통신 절차 및 본부 차원의 소통은 동북아 해양안보의 중요한 모델로 정착될 수 있다. 불필요한 해상 분쟁을 억제하는 데 이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와각지쟁(蝸角之爭·불필요한 분쟁)은 양국을 힘들게 만들 뿐이다. 지금은 안보의 틈을 메워 갈 때다.

#한일 해상갈등 방지#cues#해상 신호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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