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새겨진 韓민족의 恨… 해외서 맥 잇는 ‘디아스포라 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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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함의 美제자’ 프레슬리
‘아쟁살풀이’에 이방인 애환 담아
“이민자들 ‘원형’ 보전하며 자긍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백인 무용수가 살풀이 곡조에 맞춰 한발 한발 예사롭지 않은 발 디딤새를 뽐낸다. 곱게 빗어 넘긴 백발의 쪽머리에 비녀를 꽂은 그는 아쟁 선율에 따라 빙글빙글 돌며 미색 치마저고리를 부풀리고, 하얀 수건으로 호를 그려 살(煞)을 신명 나게 풀어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 ‘일이관지―조선춤방Ⅱ’에서 미국인 무용가 메리 조 프레슬리(사진)가 춘 ‘아쟁살풀이’의 한 장면이다. 이민 3세 한국계 미국인 전수생 2명과 무대에 올라 ‘한국인의 정서’인 한(恨)을 춤으로 담아낸 것.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하고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콘텐츠가 각광받는 가운데, 해외에서도 한국무용을 추는 무용가들과 전승자들이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디아스포라 춤은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프레슬리는 하와이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무용가로 활동한 한라함(본명 배용자·1922∼1994)의 제자이자 하와이대 한국무용과 강사다. 부산에서 태어난 한라함은 1948년 하와이 이민자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국무용을 알리는 데 헌신했다. 프레슬리는 “어린 시절과 여생을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보낸 한라함 선생은 생전 그리움을 춤으로 담아냈다”며 “특히 그가 말년에 안무한 ‘도살풀이춤’에는 이방인으로서의 애환이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들 춤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고 합쳐진 각 전통무용의 ‘원형’을 간직한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 옌볜은 한국 근대무용의 효시로 여겨지는 무용가 최승희의 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이주한 디아스포라 무용가 박용원(1930∼1992)을 중심으로 그 제자 최미선 등이 계보를 잇고 있다. 박용원은 1950년대 최승희무용단, 옌볜예술대 등에서 활동하며 전통무용 확산에 힘썼다.

이처럼 원형을 보전하려는 의지는 이민자들의 지리적, 문화적 고립에서 비롯했다. 프레슬리는 “하와이는 캘리포니아 등 미국 내 다른 주보다 규모가 작고 고립돼 있어 초기 이민자들은 춤과 음악을 지킴으로써 고국과 연결되고 문화적 자긍심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최미선은 “옌볜예술대 등 민족 교육기관을 설립하며 해외에서 민족 예술을 지키려던 과거 조선인들의 디아스포라적 노력이 원형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디아스포라 춤#백인 무용수#메리 조 프레슬리#아쟁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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