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어제 2시간 ‘맛보기 대북 심리전’
재개 이유 밝히고 북핵 뉴스도 다뤄
확성기 40여개 중 5개이내만 가동… 軍 “北 또 도발땐 가동 확대” 경고
9일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지 4시간 만인 오후 5시, 휴전선 인근 접경 지역에서 북한 동포를 향한 방송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실과 희망의 소리를 전하는 자유의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아나운서의 인사로 시작된 이날 방송은 2시간 동안 이어졌다.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 회담을 계기로 중단, 철거된 지 6년 만에 재개된 이날 대북 확성기 방송은 우리 군이 제작하는 대북 심리전 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고출력 확성기로 재송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 BTS 노래-北 인권 실태 송출
이날 방송 초반부에선 앞서 4일 우리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를 국무회의 의결 등 절차를 거쳐 전면 효력 정지시킨 사실도 알렸다. 당시 이 사실을 공식 발표한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의 육성도 직접 들려줬다. 이어 방송은 한미일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 이사회에서 북핵 프로그램 등을 규탄한 소식을 알리는 등 북한의 실상을 고발했다.
방송에선 외부에서 유입된 드라마 등 영상물 시청을 북한 당국이 단속해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 등 인권 실태도 언급했다.
방송은 “삼성전자의 지능형 손전화기(스마트폰)가 전 세계 38개국에서 출하량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 등 한국의 발전상도 알렸다. 또 방탄소년단(BTS)이 2020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노래 다이너마이트와 버터, 봄날 등도 연이어 흘러나왔다. 북한군 내 MZ세대가 많고,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 BTS가 알려져 있는 만큼 이렇게 편성한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2018년 철거 전 최전방 지역에 설치돼 있었던 고정식 방송 장비 24개와 이동식 장비 16개 가운데 상당수를 다시 설치했다. 그중 이동식보다 방송 출력이 강해 밤 기준 휴전선 이북 30km 넘는 지역까지 들리는 고정식 확성기 일부로 우선 방송을 시작했다. 실제 방송을 한 확성기는 5개 이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이날 우선 2시간 동안 대북 확성기 위력을 본보기로 보여 준 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재가동 확성기 수를 대폭 늘릴 방침이다.
군 당국은 확성기 방송에 앞서 지난주에는 전방지역에서 확성기 점검 및 이동, 설치, 운용 절차 숙달 등으로 이어지는 ‘자유의 메아리 훈련’을 비공개로 실시했다고 이날 밝혔다. 대북방송 재개 결정에 대비해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영상까지 공개했다. 이 훈련이 실시된 건 확성기 방송이 중단된 2018년 이후 처음이다.
● 군, 북한의 확성기 조준 도발에 대비
이날 확성기 방송은 2시간만 이어졌지만 군은 방송을 재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 당국이 크게 동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확성기 방송을 듣고 귀순한 북한 병사도 속출했던 만큼 북한이 크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2017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면서 총상을 입은 북한군 오청성 씨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등이 나온 확성기 방송으로 한국 가요를 즐겨 들으며 한국 사회를 동경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오 씨 외에도 북측 전방지역에서 근무하다 귀순한 북한군이 귀순 결심 계기 중 하나로 확성기 방송을 언급해 왔다. 정부가 그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며 여러 차례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라고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운태 전 육군참모차장(원광대 석좌교수)은 “과거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최신 인기 가요를 틀면 북한군이 어깨를 들썩이거나 발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우리 군 감시자산에 자주 포착됐다”며 “확성기 방송이 북한군의 사상과 감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라고 했다.
군 당국은 확성기 방송 재개를 계기로 북한이 확성기를 조준해 사격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북한 동향을 주시하며 대비하고 있다. 실제 북한은 2015년 8월 4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목함 지뢰로 도발한 것에 대한 상응 조치로 우리 군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20일 확성기 부근에 2차례 포사격을 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9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열고 “북한이 대북방송을 빌미로 직접적으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며 “북한이 도발할 경우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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