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서학개미’ 美 주식 4년 반만에 10배… 800억 달러 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0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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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국내 증시) 대신 미장(미국 증시)으로.’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에 입문했던 이른바 ‘동학개미’들이 깃발을 내리고 ‘서학개미’로 바뀌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6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821억1849만 달러(약 113조 원)로, 사상 처음 8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만 해도 84억 달러 정도였는데, 4년 반 만에 10배로 늘었다.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3위인 LG에너지솔루션(82조6020억 원) 주식을 전부 사고도 30조 원이 남을 만큼 엄청난 규모다.

▷서학개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AI) 관련주다.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서만 147% 오르는 등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주식은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순이다. 요즘엔 주식을 1주 미만으로 거래하는 소수점 거래를 통해 소액으로 꾸준하게 해외 주식을 사 모으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상속과 증여 목적으로 유망 종목을 골라 장기 투자하는 부모도 많다.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에 자산을 많이 보유한 것을 전적으로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지지부진한 국내 주식시장이다. 올해 들어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이 150억 달러(약 21조 원) 늘어나는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11조5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개미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이다. 올해 들어 이달 7일까지 미국 S&P500지수는 12.74% 상승했지만 코스피는 2.54%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은 AI발 글로벌 증시 랠리에서 소외돼 있는 데다 지난해 증시를 이끈 2차전지 관련주도 주춤해 마땅한 주도주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수익률은 낮은데 배당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변동성은 심하다. 테마주, 주가 조작 등이 판을 치면서 도박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미국 투자 상위 상품은 배당·테크 관련인 데 반해 국내 상품은 단기 투자 성격의 ‘레버리지’ 상품에 쏠려 있다.

▷올해 4월 한 온라인 재테크 커뮤니티가 2030세대 투자자 593명에게 물어보니 5명 중 4명(78.8%)은 현재 한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지 않거나 앞으로 투자 비중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기업들의 주된 자금 조달 통로인 주식시장의 물길이 마르면 기업과 한국 경제의 성장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기업의 체질 개선을 통해 실적을 높이고 후진적 자본시장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면 한국 증시를 버리고 미국으로 향하는 서학개미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서학개미#미국 주식#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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