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이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진 데다 글로벌 경기 불황에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 역시 한꺼번에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경영분석(속보)’에 따르면 외부 감사 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기업 3만2032개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곳은 40.1%였다. 이는 1년 전보다 5.5%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3년 이후 최대치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대출이자 등 금융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이 수치가 1보다 작으면 연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은 2.195배로 집계됐다. 금융비용 대비 2배 수준의 영업이익을 벌어들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2022년(4.437배)에 비해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영업 적자로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인 기업도 전년 대비 2.8%포인트 늘어난 27.8%에 달했다. 강영관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금리 상승으로 인해 기업들의 차입금과 평균 이자율이 증가한 데다 지난해 업황 부진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감소하면서 이자보상배율이 대폭 하락했다”고 말했다.
수출 회복 지연과 내수 침체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국내 기업들의 매출 성장률도 3년 만에 역(逆)성장했다.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2.0%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급감했던 2020년(―3.2%)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뒷걸음질쳤다. 역성장 폭도 2020년과 2015년(―2.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지난해 반도체 불황으로 인해 삼성전자 등 전자·영상·통신장비 기업의 매출이 15.9%가량 줄어든 게 전체 매출 감소에 영향을 줬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출 단가가 떨어지면서 석유정제·코크스 관련 기업의 매출이 14.1% 감소했다. 중국 등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운수·창고 기업의 매출도 12.9% 줄었다.
기업의 수익성 지표도 크게 악화했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을 뜻하는 매출액영업이익률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인 3.8%로 추락했다. 2022년(5.3%) 대비 1.5%포인트 떨어졌는데 역대 가장 낮았던 2014년(4.3%)보다도 0.5%포인트 더 낮았다.
기업의 안정성을 나타내는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전년과 비슷하거나 소폭 개선됐다. 지난해 부채비율은 102.6%로 전년(105.0%) 대비 줄었고, 차입금 의존도(28.8%)는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한은은 올해는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회복세가 뚜렷한 데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채무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좀비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자원 재배분을 통해 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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