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 성과낸 ‘KG스틸’ 가보니
AI가 철판 가공 공정 학습
완성품 품질 예측, 효율 높여
“사내 AI 전문가 있어야 도입 속도”
“인공지능(AI)이 예측한 대로 결과가 잘 나와요?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 알려줘요.”
지난달 31일 철강업체 KG스틸 충남 당진공장에서 이현주 GM(General Manager)은 이렇게 말하며 공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AI 도입 담당자인 그는 최근 공장에 도입한 퍼니스(철강 성형 장치) AI 예측 제어 시스템을 유지,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GM은 “AI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선 베테랑 현장 작업자들의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의견을 듣고 있다”고 했다.
● “AI 도입해도 고숙련 인력 필수”
KG스틸은 2019년부터 공장에 AI를 도입해 비용을 줄이고 공정 효율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도입된 퍼니스 예측 제어 시스템은 완성품의 품질을 예측하는 장비다. KG스틸 당진공장에선 원료인 철판을 내부 온도가 700∼800도까지 올라가는 퍼니스에 집어넣어 고객사가 원하는 강도와 물성을 가진 제품으로 가공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AI 예측 시스템은 퍼니스 내부 온도와 공정 속도를 측정해 완성품의 품질을 예측하도록 해준다.
AI 도입 초기에는 현장 근로자들의 반대가 많았다. AI가 언젠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협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GM은 “AI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지 인력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걸 오랜 시간에 걸쳐 설득했다”며 “실제로 대체된 인력은 1명도 없다”고 했다.
이 GM은 AI에는 적용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여전히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고객사의 영업 상황에 따라 원하는 품질 수준이 다를 수 있다. 제품이 많이 팔릴 때는 품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빠르게 생산해 공급하는 게 중요하고, 신제품을 생산하는 시기엔 평소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객사마다 중시하는 품질 요소가 다를 때도 많다. 어떤 회사는 강도를 중요시하는 반면에 다른 곳은 가공성을 중요하게 보기도 한다. 이 GM은 “AI에 고객사의 성향과 요즘 업황이 어떤지를 곧바로 학습시키는 건 어렵다”며 “AI가 단순 업무를 대신해주고 사람은 AI가 할 수 없는 복잡한 판단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 AI 학습 데이터 쌓는 데만 2, 3년…장기 투자 필요
KG스틸의 AI 도입을 컨설팅한 업체 마키나락스의 정혜림 매니저는 “이 GM과 같은 사내 AI 전문가가 있어야 AI 도입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도입에서 ‘문제 정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AI 기술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를 결정해야 도입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AI 업무를 하기 전 10년 동안 공정 관리 업무를 했던 이 GM은 2019년 제품 원료인 철판의 수율을 높여야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AI 도입을 처음 시도했다. KG스틸은 두루마리 모양 철판을 매일 200개가량 수입해 쓰는데, 제조 회사마다 끝부분 처리 형태가 달라 모든 철판을 1∼2m씩 잘라서 버리는 바람에 수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 GM은 “AI에 이미지 학습을 시켜 끝부분을 잘라내지 않아도 되는 철판을 골라내도록 해 연간 9억 원을 절감했다”고 했다.
AI 도입에 긴 시간과 많은 자금이 투자돼야 하는 만큼 경영진의 의지도 중요하다. AI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더라도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쌓는 데만 길게는 2, 3년이 걸리기 때문에 먼 미래를 내다본 투자가 필요하다. 정 매니저는 “(AI 도입에서) 정부 재정 사업이 도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사업을 따내면 초기 비용 부담이 줄기 때문에 실무자 입장에서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9% 수준인 제조업 현장 AI 이용률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민간과 함께 5년간 1조 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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