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된 앤디 김
‘낡은 정치 타파’ 당 불출마 압박 깨… 아메리칸 드림 이룬 父母 ‘열성교육’
9·11테러에 공직 관심, 오바마 만나… “한국계 첫 상원 진출 중요성 깨달아”
《올 초만 해도 그는 미국 언론에서 ‘언더도그(underdog·이길 가능성이 없는 약자)’였다. 몇 달 새 그의 입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에 100명뿐인 상원의원 입성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연방 상원의원(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앤디 김 하원의원(41·뉴저지주) 얘기다.》
4일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 김 의원의 상원 도전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공보 보좌관은 “다음 기회를 기다려 달라”고 답해 왔다. 그 정도로 지금 김 의원은 미국 안팎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 중 하나다. 이는 단지 그가 첫 한국계 ‘예비’ 상원의원이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당이 주도하는 정치에 맞서 자신의 방식으로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김 의원의 스토리에 뉴저지주를 넘어 미 전역에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 역시 적지 않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김 의원은 미 주류 정치와 전국적 관심을 뉴저지로 끌고 온 인물”이라며 “한국계로서 상원의원에 다가간 점도 의미가 크지만, 주류의 기존 관행을 깨며 미 정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대목에서도 상징성이 있다”고 평했다.
● 당 지도부 권고에 맞서다
뉴저지주 현직 상원의원인 밥 메넨데스는 2006년부터 18년 동안 미 상원을 지키며, 외교위원장까지 오른 민주당 거물 정치인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22일 부패 혐의로 기소됐고, 자택에서 나온 금괴는 낡은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젊은층을 충격에 빠뜨렸다.
김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검찰이 메넨데스 의원을 기소한 지 24시간도 안 돼 메넨데스의 불출마를 촉구하며 11월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소 발표)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민주주의는 유권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 제 모든 경력을 걸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김 의원은 당 지도부와 어떤 교감도 없이 소셜미디어에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참모들마저 모두 만류했던 일이다. 상원의원 출마로 하원을 포기하면 애써 일군 지역구를 잃을 수 있었다. 2018년부터 그를 하원의원으로 세 번 뽑아준 뉴저지주 남부 지역구는 원래 공화당 텃밭이었다.
두 달 뒤, 뉴저지주의 주류 정치 가문인 현직 주지사 필 머피의 부인 태미 머피 여사가 출마 선언을 했다. 뉴저지주에서는 50년 동안 내리 민주당 후보가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민주당 후보 경선이 본선보다 치열하다는 얘기다. 당 지도부는 김 의원에게 전화해 불출마를 종용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하원 동료들도 내 편을 들지 않아 외로웠다”고 했다.
한국으로 치면 당협위원장인 카운티위원장이 지지하는 후보가 투표용지에서 좋은 자리에 배치되는 뉴저지주의 ‘카운티 라인’ 제도도 그에겐 불리했다. 나머지 이름은 구석에 배치되는데, 이를 춥고 황량하다 해 “시베리아 라인”이라 부를 정도다. 게다가 전체 여론조사에선 김 의원이 우세했지만, 뉴저지주 민주당원들이 포진한 버건 카운티를 비롯해 인구수가 많은 지역 카운티위원장들은 머피 여사를 지지했다.
김 의원은 이런 위기를 적극적인 선거 전략으로 활용했다. ‘금괴 메넨데스+당의 입김+불공정한 투표용지=낡고 부패한 정치’란 공식을 내세웠다. 특히 카운티 라인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걸었고, 주요 언론이 그의 도전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결국 3월 머피 여사는 후보에서 사퇴했고, 김 의원은 득표율 75%로 이달 4일 경선에서 승리했다.
아직 메넨데스 의원의 무소속 출마란 변수가 있지만, 11월 5일 미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원의원 선거에서 김 의원의 당선은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 ‘아메리칸 드림’ 이룬 父… 누나도 천재 학자
“앤디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공직자라는 느낌이 강하고 상식적으로 보여요. 또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인지 알 거라고 확신합니다.”
뉴저지주 버건 카운티에서 뉴욕으로 출근하는 30대 남성 티오 씨는 11월 선거에서 김 의원을 뽑을 거라며 그의 강점을 ‘상식적’이라고 꼽았다. 김 의원도 여러 차례 “망가진 정치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게 하고 싶지 않다”며 “고장난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리겠다는 목표로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밝혀 왔다.
보스턴에서 태어나 뉴저지 남부에서 자란 김 의원은 이민 2세대다. 아버지 김정한 박사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나온 유전공학 박사이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어린 시절 한국 고아원에서 자란 김 박사는 국비 장학생 기회를 잡아 미국에 왔다. 그는 어린 남매를 데리고 워싱턴 의사당을 구경시키며 “네게 모든 것을 선사한 나라(미국)를 사랑하고 가슴에 새기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김 의원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헌신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CBS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음악을 배우지 못했지만,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며 “7, 8세 때쯤 첼로를 웬만한 어른보다 잘 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자신감의 원천이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김 의원의 누나인 모니카 김은 저명한 역사학자다.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인 그는 6·25전쟁과 미 외교정책의 변화에 대한 연구로 2022년 ‘천재들의 장학금’으로 불리는 미 ‘맥아더 펠로십’으로 선정돼 국내에서도 조명받았다.
남매는 모두 공부를 잘했다. 누나는 예일대를 거쳐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김 의원은 학년 정원이 26명에 불과한 소수 정예 사립대 딥스프링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9·11테러를 계기로 중동 분야 국제전문가의 길을 택했다. 시카고대로 편입한 그는 노숙자 인권 단체에서 일하며 당시 주 상원의원이던 버락 오바마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부인 라이 씨를 만난 곳도 옥스퍼드였다.
국무부 공무원이 된 그는 2013년 이라크 전문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발탁됐다. 31세에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 브레인이 된 것이다. 밤낮없는 업무에 지친 그는 휴식기를 가졌다가 ‘힐러리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백악관에 가길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섰고, 2018년 결국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하원 출마로 길을 틀었다. 그는 이를 두고 “내 경력은 ‘우연’이 이끌고 있다”고 했다.
● 한국계와 미국인 사이
김 의원은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태를 벌인 직후 새벽까지 혼자 남아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AP통신에 포착됐다. 그가 ‘공복(公僕·국가의 심부름꾼)’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부상한 결정적인 장면이다. 그때 그가 입었던 양복은 현재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 진열돼 있다. 김 의원은 CBS 인터뷰에서 “J크루(중가 브랜드) 연말 세일 때 산 양복”이라며 “평범한 미국인이면 누구라도 할 일인데, 상식적인 일이 관심받는 그런 시기였다”고 했다.
김 의원은 자신이 초등학교 1, 3학년 두 아들의 아버지란 점도 강조한다. 정치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도전했다”고 밝혀 왔다. 경선 승리 직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올린 영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은 차맨더(한국명 ‘파이리’)”라는 내용이었다. 바쁜 일정에도 최소한 토요일 아침은 아이들과 포켓몬 카드 트레이딩 게임을 한다고 한다.
‘한국계’로서 김 의원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한인사회 일각에선 미국에서 나고 자란 김 의원이 한인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저지주 한인 커뮤니티 관계자는 “뉴저지 주지사 입김 탓도 있었지만, 상당수 한국계 커뮤니티 리더들은 앤디 김 경쟁자였던 머피 여사를 지지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 자신도 2022년 한인의 미 정치 도전사를 담은 전후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선’에서 이민 2세대로서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어릴 때 한국계라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을 때가 있었죠. 흑인도 백인도 아니어서 미국 인종 방정식에서 빠져 있던 저를 그냥 미국인으로 봐주길 바랐어요. 부모님도 제가 식당에서 주문할 때 ‘다시 말해 달라’는 소리를 들을 필요 없는 미국인으로 크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시점부터 내가 한국계 미국인이란 사실을 직시하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의회에 진출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고 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는 “미 의회에서 유일한 한국계이니 나를 활용하라”고 백악관에 전달했다. 김 의원은 “미 행정부의 중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한국계인) 당신을 여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떠올렸다.
김 의원은 상원의원에 도전하며 어느 때보다 한인 유권자들과 적극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1월 13일 미주 한인의 날을 맞아 한인 밀집지역 뉴저지주 포트리의 한인유권자연대 사무실을 찾은 그는 “의회 지도자들이 한인 사회 의견은 듣지도 않고 한반도 미래와 관련한 중요 정책을 논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상원에 한인 사회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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