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해마다 한 번은 스쿠터 여행을 간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스쿠터 한 대를 며칠간 빌려 남편이 운전하고 나는 뒤에 타는 것이 고작이다. 차 대비 불편한 점이 많지만 해를 두고 잊지 않고 찾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차를 타고 보는 풍경이 3인칭 관찰자 시점쯤 된다면 스쿠터는 그야말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따가운 볕도, 차디찬 바람, 흩날리는 꽃내음, 축사의 쾨쾨한 냄새조차 그대로 받아내고 온전히 감각한다. 계절을 만끽하기에 이만한 방법이 없다. 더불어 둘이 꼭 붙어 타는 그 방식도 비일상의 특별한 경험이 된다. 소중한 이의 허리를 끌어안고 혹은 등에 업혀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다. “여보, 안 추워? 추우면 말해!” 어깨를 감싸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고, “저기 봐! 진짜 예뻐!” 놓칠세라 알려주기도 한다. 설령 사소한 다툼이 있더라도 부둥켜안고 있다 보면 금세 마음이 누그러진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스쿠터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그 강제된 단출함이다. 각자에게 허락된 짐이라고는 비좁은 짐칸에 들어갈 작은 가방 하나씩이 전부이다. 그러니 짐을 쌀 때면 고민에 빠진다. ‘이게 꼭 필요할까?’ 그렇게 골라내는 것은 몇 번의 사이클을 거쳐 결국 다음으로 수렴한다. 속옷, 세면도구, 충전기, 다이어리. 욕심부리면 블루투스 스피커. 이렇게 최소한의 짐을 추려낼 때, 나는 어떤 희열을 느낀다. 문득 도망치고 싶은 어느 날이 오더라도 고작 이 정도만 있다면 어디로든 얼마든지 흘러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마저 느낀다. 아침마다 짐을 싸고 옮기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은 덤이다.
가끔 혼자 짧은 여행길에 오를 때도 캐리어보단 배낭이다. 마찬가지로 속옷, 세면도구, 충전기, 다이어리에 잠옷 겸 외출복 한 벌. 욕심부리면 읽고 싶은 책 한 권. 이 정도도 어깨로 메기에는 은근히 무거워서 매번 후회한다. ‘아, 그냥 작은 캐리어라도 챙길걸.’ 그런데 “부칠 짐 있으세요?”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할 때의 묘한 쾌감이 좋아서, ‘배낭 하나’가 주는 단출한 기분, 그 상징성이 좋아서 결국 또 배낭을 고르고야 만다. ‘자유’를 물성화하면 ‘최소한의 배낭’이 아닐까. 부족하지만 충분한 배낭 하나를 메고 걷고 싶은 길을 걸을 때, 더할 나위 없음을 느낀다. 최소한의 행복을 확인할 때, 비로소 다시 자유로워진다.
물론 그 배낭 하나가 진실로 충분할 리는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더 많이 얻고자, 더 인정받고, 더 많이 벌고, 더 잘 먹고 많이 갖고자 애쓰는 ‘현생’에서 간헐적으로나마 ‘무소유’를 모사하는 작업에 가까울 것이다. 언제든 축적해온 ‘소유’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이는 필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소유를 거듭 점검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양어깨로 짊어지는 그 과정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먼 훗날 정말 긴 여행을 떠나게 되는 날, 그때 가져갈 수 있는 짐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명징하게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또, 배낭이다. 그러니까 결국 또, 같은 질문을 한다. ‘이게 꼭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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