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평’ 주연 맡은 이한 씨
“눈앞에서 후임 잃고 PTSD 앓지만… 그날 일 잊히지 않도록 연극 기획”
北포격 후 포기한 배우 꿈에 도전… 14년 전 힘든 기억 떠올리며 열연
“그날 제 전우와 선임, 그리고 저와 같은 꿈을 꾸던 동생을 잃었습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입은 부상으로 제대했던 이한 씨(33)는 13일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삼키며 입을 뗐다. 짧게 머리를 자르고 해병대 군복을 입은 그는 14년 전 포격전 당시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씨는 “숨조차 쉴 수 없던 화마 속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싸웠다”며 “우리는 소중한 오늘을 지키기 위해 나아간다”고 했다.
이 씨는 이날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연극 ‘연평’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사를 읊어가며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당시 현장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연평 주민과 또 다른 내일을 꿈꾸던 해병대원을 연기하던 배우들 손에는 수백 번의 손길이 느껴질 만큼 해진 극본이 들려 있었다.
포격전 당시 이 씨는 입대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19세 청년이었다. 연기자가 꿈이었던 그는 갓 입대한 후임과 제대한 뒤 뭘 해야 할지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했다. 그러나 북한의 포격으로 이 씨는 동갑내기이자 각별했던 후임을 눈앞에서 잃었다. 당시 해병대 장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민간인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이 씨도 양쪽 볼과 왼쪽 다리 등 신체 네 곳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으로 제대했다. 연습실에서 만난 이 씨는 “아끼던 후임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아직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남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제대 후 연기를 한동안 포기했다. 이런 그를 다시 무대로 이끈 것은 연평도 포격전이 시민들에게 잊혀 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서울시 청년부상제대군인센터의 협조를 받아 직접 연극을 준비했다. 이 씨는 “PTSD 때문에 담당 의사들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연극을 하는 걸 반대했다”며 “포격전을 알릴 수 있다면 내가 감수해야 될 부분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가 기획한 연극 ‘연평’은 포격전 당시 군인과 지역 도민들의 아픔을 다루는 내용이다. 이달 28일 첫 상연을 앞두고 있다. 주인공도 이 씨가 맡았다. 연출 김민혁 씨(31)는 “이 씨가 적었던 수십 페이지의 수기집, 다큐멘터리, 책 등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다 같이 준비하고 있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달해 군인들의 위상과 처우에 도움이 되는 극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씨는 현재 청년부상제대군인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이곳에서 부상으로 제대했으나 국가유공자 등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한 군인들을 돕는 역할도 이어가고 있다. 이 씨는 “(포격전 때 숨진 후임이) 못 이룬 삶의 시간 동안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연극 ‘연평’은 28일부터 서울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상연된다. 28, 29일 각각 두 차례씩 상연 후 다음 달 1일 저녁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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