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채 상병 사건의 小小大大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5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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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본도 수사의 기본도 정치의 기본도
‘작은 건 작다 하고 큰 건 크다’ 하는 것
수사권 없는 수사에의 개입 문제 있지만
수사권 있는 수사에의 개입처럼 다뤄선 안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지난주 국회 법사위 채 상병 관련 청문회에서 정청래 위원장의 무례한 위원회 운영을 보는 것은 심히 불편했다. 그러나 유재은 국방부 법무비서관의 증언 등은 ‘이첩 방해’가 아니라 ‘무단 이첩’의 프레임에서 이 사건을 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해병대 수사단은 군인 사망 사건에 수사권이 없다. 수사권 없는 수사가 독립적인 행정행위인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수사권 없는 수사의 이첩까지 굳이 독립적인 행정행위로 볼 이유는 없다. 이첩 자체는 상관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일반적인 행정행위다. 상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했는데도 이첩을 했으면 항명이라고 본다.

경찰로서는 무단 이첩된 기록을 접수할 의무가 없고 국방부는 회수할 권리가 있다. 두 다른 기관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조율은 대통령실이 할 수 있다. 임기훈 당시 대통령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은 관련 증언을 거부하긴 했지만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은 무단 이첩이니 접수하지 말라고 경찰에 지시하고 접수 거부된 이첩 서류를 회수해 가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본류는 이첩이 아니라 수사다. 수사에 외압이 있었느냐다. 다만 수사권 없는 수사를 독립적인 행정행위로 봐야 할지, 독립적이라면 어느 정도나 독립적으로 봐야 할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수사권 있는 수사에서 외부 개입으로 결과가 바뀌었다면 법으로 처벌 가능한 외압이다. 수사권 없는 수사도 독립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사권 있는 수사만큼은 아니다. 비슷하게 독립적이라면 수사권이 있거나 없거나 차이가 없어진다. 수사는 수사인 이상 권한이 있건 없건 외부 개입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국방부 장관-해병대 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지시에 의해 수사 결과가 바뀌었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규범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서 다 법으로 처벌할 수준은 아니다. 수사권 없는 수사는 사실행위에 가깝고 수사권 있는 수사가 법적인 의미를 지닌 수사이기 때문이다.

수사권 없는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는 수사권 있는 수사기관의 수사에 선입견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단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수사 결과는 과도하게 단정적이었다. 게다가 수사 결과를 상관에게 보고하기도 전에 채 상병 유족에게 알리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모든 책임자의 처벌을 약속했다. 수사권이 있어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수사권 없는 사람이 했다. 정의감에 넘쳐서 그랬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준수하지 않으면서 행동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고는 약속한 대로의 이첩이 어려워질 것 같자 무단으로 이첩을 강행했다.

소소대대(小小大大), 작은 건 작다 하고 큰 건 크다고 해야 한다. 채 상병 사건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중인 외압 의혹은 법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수사에의 개입을 다루는 부수적인 사건이고 경찰이 수사 중인 과실치사 의혹이 본래의 큰 사건이다.

청문회에서 지휘와 지도를 구분한 임 전 사단장의 변명은 형식논리적이다. 대민(對民) 작전에서 배속 부대는 공식 지휘 계통이 어떻든 배속한 부대 지휘관의 지휘보다 원대(原隊) 지휘관의 지도에 더 영향을 받기 쉽다. 경찰에서 임 전 사단장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잘못된 것으로 판정난 개입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

공수처는 불소추 특권이 있는 대통령에 대해 기소 의견을 낼 수 없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이나 해병대 사령관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 의견을 낸다면 대통령의 혐의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굳이 특검 없이도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소추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서일필(鼠一匹·쥐 한 마리)로 태산을 울리는 게 된다.

수사기관은 큰 것도 크고 작은 것도 크다고 하기 쉽다. ‘검사 윤석열’은 온갖 것을 다 농단으로 규정하고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에서 거의 다 무죄가 났다. 수사권 없는 수사에의 개입이 비록 서일필이 아니라 묘일필(猫一匹·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된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나라를 흔드는 것은 비례가 크게 어긋난다. 윤 대통령에게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나라를 다시 한번 퇴행시키는 게 된다. 지금 수사를 하는 쪽이나 지켜보는 쪽에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비례감의 회복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채 상병#사건#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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