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와인, 국립공원 어우러진 시애틀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7월 20일 0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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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의 여행블루스] ‘캐피톨 힐’ 커피 마니아 발길… 웅장한 산맥과 빙하는 신비감 가득

시애틀 랜드마크 ‘스페이스 니들’. GETTYIMAGES
시애틀 랜드마크 ‘스페이스 니들’. GETTYIMAGES
미국 시애틀 여행이 더 좋은 이유는 감미로운 커피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시애틀은 스페셜티커피협회가 주관하는 ‘글로벌 스페셜티 커피 엑스포’가 열릴 정도로 온 도시가 커피에 진심이다. 진심이 통했을까. 실험적인 로스팅(커피콩을 볶는 작업)과 스페셜티 커피(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가 시행하는 품질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은 등급 커피)의 최신 흐름을 확인하려고 시애틀을 방문하는 여행객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등록된 카페만 1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커피가 여행 목적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커피 성지 캐피톨 힐

커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캐피톨 힐’. 위키피디아
커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캐피톨 힐’. 위키피디아
시애틀 커피의 진수를 확인하려면 커피의 성지로 불리는 ‘캐피톨 힐(Capitol Hill)’을 찾아가면 된다. 이곳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곳은 세계 최대 스타벅스 매장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앤드 테이스팅 룸’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과 함께 커피 마니아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이 매장은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가 10년간 구상한 끝에 캐피톨 힐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2014년 개장했다. 약 1390㎡ 규모의 매장을 오픈하는 데 25억 원 넘는 돈이 투자됐다. 덕분에 여행자들은 스페셜티급 원두가 거대한 황동색 로스팅 기계에서 볶이고 포장되며 추출되는 커피 제조 과정 전체를 볼 수 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커피 문화와 스페셜티 커피의 최신 흐름을 경험하다 보면 흥이 절로 나고 눈과 입은 덩달아 즐거워진다.

매장에서 나와 커피향 가득한 거리를 거닐다 보면 각기 다른 개성을 간직한 작은 독립 카페들을 만나게 된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가이드북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카페들이 커피 여행자를 반긴다. 이곳 로스터리 카페는 대부분 커피 산지와 직거래 형식의 공정무역을 통해 사들인 커피콩을 쓴다. 바리스타 나름의 블렌딩과 로스팅으로 직접 볶은 원두를 사용해 고객에게 공급한다. 라테아트 창시자 데이비드 쇼머가 나뭇잎 모양의 로제타(Rosetta)를 선보였던 ‘에스프레소 비바체(Espresso Vivace)’를 필두로, 바리스타의 철학과 자유분방한 개성을 담은 카페들이 걷는 내내 눈에 띌 테니 마음이 이끄는 곳을 골라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겨보자. 캐피톨 힐에는 카페만 있는 게 아니다. 잘 정비된 거리마다 수제 맥주 양조장부터 펍, 해산물 레스토랑, 책방까지 그야말로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이 중 한 곳만 들러야 한다면 주저 없이 시애틀 최초 북카페인 ‘엘리엇 베이 북 컴퍼니(Elliott Bay Book Company)’를 추천한다. 1973년 ‘올드 타운’으로 불리는 파이어니어 스퀘어에 문을 연 뒤 2010년 이곳 캐피톨 힐로 옮겨 왔다. 2층 규모의 작은 독립 책방이지만 15만 권 넘는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책에는 직원들이 자필로 적은 간결한 추천 문구가 적혀 있어 글을 찾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는 순간을 놓치지 말자.

시애틀 여행이 즐거운 또 다른 큰 매력은 도시가 그리 복잡하지 않고 명소들이 서로 붙어 있어 다니기에 편하다는 점이다.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였던 ‘시애틀 센터(Seattle Center)’는 당시 건축했던 시설들을 문화 관광 공간으로 재활용한 곳이다. 센터 주변에 높이 185m의 우주선 모양 전망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과 오페라하우스, 2개의 극장과 콜로세움, 그리고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Chihuly Garden and Glass)’와 ‘대중음악 박물관(Museum of Pop Culture·MoPOP)’, ‘시애틀 어린이 박물관’ 등 여러 공공건물은 물론, 세계 각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있어 시애틀의 대표 명소로 통한다. 이 중 스페이스 니들은 시애틀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특정 시간에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라면 미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시애틀 시티패스를 활용하면 입장료를 할인받을 수 있으니 시티패스에 포함된 관광지를 고려해 일정을 짜는 것도 좋다. 360도 파노라마 뷰를 자랑하는 전망대에 오르면 다운타운 전경뿐 아니라, 시애틀을 둘러싼 아름다운 항구와 유니언 호수(Union Lake), 흰 눈을 덮어쓴 ‘레이니어 산(Mount Rainier)’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환상적인 치훌리 유리공예

스페이스 니들 옆에는 세계적인 유리 조형의 거장 데일 치훌리(1941~)의 전시관인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가 있다. 시애틀 센터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라이트 가문이 그의 작품을 영구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장 건립을 추진해 2012년 개장했다. 미국 최초 무형문화재인 치훌리는 유리공예를 조형물로 격상한 세계적인 유리 조형가다. 그의 작품은 백악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등 세계 200여 개 미술관과 주요 시설에 소장돼 있으며 한국에서도 전시한 바 있다. 실내 갤러리, 글라스 하우스, 온실, 야외 정원에 나뉘어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자연광 아래서 더욱 빛나는데, 보는 각도와 빛 세기에 따라 각각 다르게 비쳐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의 대표작인 유리공예 시리즈와 개인 컬렉션, 스페이스 니들을 배경으로 배치된 작품들은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뤄 정원에는 식물만 있어야 한다는 기존 통념을 깨버린다.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유품이 전시된 ‘대중음악 박물관 (MoPOP)’. MoPOP 공식 페이스북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유품이 전시된 ‘대중음악 박물관 (MoPOP)’. MoPOP 공식 페이스북
치훌리 가든 가까이 자리한 대중음악 박물관 ‘MoPOP’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원래 이름은 ‘EMP(Experience Music Project)’였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은 시애틀에서 태어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1942~1970)의 음반과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사용했던 흰색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비롯해 그의 손때 묻은 의상과 친필 메모 등 유품을 전시했다. 그래서 일명 ‘지미 헨드릭스 박물관’으로 통한다. 또한 박물관에는 시애틀을 무대로 한 전설적인 그런지 록(1980년대 펑크와 메탈을 혼합한 음악) 밴드 ‘너바나(Nirvana)’의 사연이 담긴 여러 물건도 전시돼 있다. 그래서 지미 헨드릭스와 너바나의 팬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가야 하는 곳이다. 대중음악 박물관으로 개편된 이후에는 로큰롤, 재즈, 블루스, 솔, 힙합 등 다양한 대중음악 장르를 탐구할 수 있다. 체험관에서는 전자기타, 드럼, 키보드 등을 비롯해 각종 이펙터와 턴테이블을 직접 다뤄보는 음악 체험도 가능하다.

도시 관광만 하는 게 아쉽고 시간적 여유도 있다면 시애틀 근교 지역으로 나가보자. ‘숲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시애틀에서 차로 3~4시간만 이동하면 국립공원이 3개나 있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니어 산 국립공원(Mt. Rainier National Park)’,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 웅장한 산맥과 빙하 등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North Cascades National Park)’이 바로 그곳이다. 이 중 올림픽 국립공원은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롭고 몽환적인 숲 풍광 덕에 영화 ‘트와일라잇’ ‘트윈 픽스’ ‘씬 시티’ ‘다크 엔젤’ 등 초현실적 판타지물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캠핑이나 로지(lodge) 숙박을 하며 초록의 정기를 충분히 누리면 좋겠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는다면 현지 여행사가 운영하는 당일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세계 정상급 와이너리

시애틀이 자리한 워싱턴주는 캘리포니아주와 오리건주, 뉴욕주와 함께 미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시애틀 시내에서 약 20㎞ 떨어진 ‘우딘빌(Woodinville)’은 ‘샤토 생 미셀(Chateau Ste. Michelle)’과 ‘콜럼비아 와이너리(Columbia Winery)’를 비롯해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부티크 와이너리들까지 들어서면서 워싱턴주 와인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이곳 와이너리에서는 세계 정상급 와인 제조 공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와이너리와 함께 늘 따라오는 대자연의 풍경은 덤이다. 와인 테이스팅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 와인을 모르는 사람의 미각마저도 유혹할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나고 보디감은 풍부하다. 마음에 드는 와인이 있다면 구매해 신선한 제철 음식과 함께 즐겨보자.

오감 만족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시애틀만큼 완벽한 곳은 없을 것이다. 아직도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면 여행자의 오감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시애틀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4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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