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대금 정산 보름 넘게 지연
여행상품 등 소비자 환불도 중단
업계 “부도 가능성도 배제 못해”
대통령실 “피해 커지지 않게 최선”
경기 하남시에서 농업회사법인을 운영하는 최모 씨(33)는 24일 티몬으로부터 5월분 판매대금 5억여 원을 정산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티몬 측은 사정상 판매대금 정산이 어렵다고만 설명했다. 최 씨는 “직원들 월급부터 사무실 비용, 각종 대출 원리금까지 나갈 돈이 산더미”라며 “6∼7월분 판매대금 정산도 불투명한 상황인 것 같아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싱가포르 전자상거래 업체 큐텐 계열사인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보름 넘게 이어지자 해당 플랫폼 내 상품 및 서비스 판매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게다가 티몬·위메프의 결제를 대행하던 업체들마저 이들과의 거래를 중단하면서 소비자들은 항공권, 숙박권 등 구매 상품을 취소하더라도 환불을 받지 못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티몬·위메프의 지난달 이용자 수는 869만 명이다. 두 업체 합산 월간 거래액은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우리 경제 전반에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불안해진 판매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큐텐의 자금 흐름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에서는 “큐텐이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가 최악의 경우 부도 사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도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소비자와 판매자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 당국에서 신속히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티몬-위메프 미정산 최소 1000억”… 소비자들 결제 취소도 못해
[티몬-위메프 지급불능 사태] 금융권 先정산 대출까지 봉쇄, 입점업체 6만개… 줄도산 위기 구매 취소 여행상품 환불 못받아… 고객센터에 전화 30통, 연결 안돼 대금 최대 두달간 보관하다 지급… “기업 인수 과정서 활용됐을수도”
대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29)는 친구와 함께 29일 베트남 나트랑(냐짱)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5월 티몬에서 일찌감치 여행상품을 골랐고, 200만 원을 결제했다. 그런데 23일 갑자기 여행사로부터 취소 문자를 받았다. 여행사 측은 티몬 결제를 취소하고 자신들에게 직접 재결제해야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 씨는 곧바로 티몬에서 구매를 취소했다. ‘계좌환불 완료’라고 뜨는데 24일까지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30통 넘게 전화를 해봤지만 티몬 고객센터는 통화조차 안 됐다. 그로선 환불을 받기 전 이중결제를 할 수는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달 8일 위메프에서 시작된 정산 지연 사태가 같은 그룹 내 티몬으로 확대됐다.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한 판매 업체들은 도산을 우려하는 곳까지 나오고 있다.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가 티몬·위메프와 거래를 중단하자 소비자 피해도 본격화하고 있다.
● 피해 업체 “이대로면 줄도산” 호소
티몬·위메프가 판매 업체에 정산하지 못한 미수금 규모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업체들은 “아직 정산 시점이 다다르지 않은 6, 7월분 정산 금액까지 합하면 최소 1000억 원대”라고 말한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업체에서 받지 못한 미정산액만 수백억 원 규모”라며 “업계 전반으로 본다면 액수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티몬·위메프로부터 5월분 판매금을 정산받지 못한 업체는 대부분 월 정산액이 최소 수억 원대인 중·대형 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된 업체는 6만여 개에 이른다.
미정산 사태가 불거진 이후 금융권과 핀테크의 선정산 대출 시스템이 막힌 것도 판매 업체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 선정산은 플랫폼으로부터 정산금을 받기 전 미리 대출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티몬·위메프에서 생필품을 판매하던 이모 씨(38)는 “정산이 보통 두 달 뒤 이뤄지다 보니 선정산 대출을 이용했는데, 갑자기 그 방법이 막혀 당장 부가세와 4대 보험료도 미납할 상황”이라고 했다.
소비자들도 단순한 불편을 넘어 금전적 피해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계에 따르면 티몬·위메프의 결제 대행 업체들은 기존 결제 건에 대한 취소와 신규 결제를 모두 막았다. 이에 티몬·위메프에서 고객이 여행상품권이나 물품을 신용카드로 구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지불한 금액을 돌려받기도 어렵게 됐다.
대학원생 윤모 씨(25)는 며칠 전 티몬에서 8% 할인된 온라인 문화상품권 300만 원어치를 구입했다. 미정산 사태 확산에 24일 오전 환불을 시도했지만 ‘결제 취소 실패’라는 알림창만 나타났다. 윤 씨는 “티몬 같은 대형 업체에서 결제 후 물건을 받지 못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나스닥 상장 노린 무리한 인수가 화근”
문어발 확장으로 한때 주목을 받았지만 업계에서는 큐텐이 무리한 인수합병의 여파로 그룹 전반의 유동성이 말라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큐텐은 앞서 티몬·위메프를 인수할 때는 지분교환 방식을 택했지만, 올 2월 위시를 인수할 때는 현금 약 2300억 원을 동원했다. 업계와 판매자들 사이에서는 “티몬과 위메프에서의 판매 대금이 기업 인수 과정에서 일부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티몬·위메프는 고객이 결제하면 대금을 보관했다가 최대 두 달 뒤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는 이커머스 업체 가운데서도 정산 주기가 긴 편이다. 네이버쇼핑의 경우 판매자가 택배사에 물품을 발송한 다음 날 판매자에게 바로 대금이 정산되는 것과 대조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업을 줄줄이 인수할 때도 큐텐의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이미 업계에서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큐텐 측은 23일 고객의 결제 자금을 제3의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안전결제 방식의 정산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큐텐 관계자는 “회사로서는 자금 흐름을 만드는 한편으로 새로운 거래를 일으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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