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
레슬링 62kg급 이한빛 극적 합류
北선수 기권해 경기 8일전 출전권… 감각 최대한 끌어올리려 비지땀
유연성 뛰어나 낙지-문어로 불려… 감독 “한 경기 한 경기 나아갈 것”
경기를 8일 앞두고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레슬링을 시작한 후 늘 가슴에 품었던 올림피안의 꿈은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그러나 감격에 겨워 있을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출국 준비를 서두른 그는 경기 시작 4일 전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 여자 레슬링 선수로는 유일하게 파리 올림픽 무대를 밟는 이한빛(30)의 이야기다.
이한빛은 9일 파리 올림픽 레슬링 여자 자유형 62kg급 경기에 출전한다. 한국 여자 레슬링 선수의 올림픽 출전은 2012년 런던 대회 김형주(48kg급), 엄지은(55kg급) 이후 12년 만이다. 이한빛은 2004년 아테네 대회 때 여자 레슬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올림픽을 밟는 역대 네 번째 한국 선수다.
이한빛은 극적으로 올림픽 무대에 합류했다. 이한빛은 4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아시아 쿼터 대회 준결승에서 패하면서 상위 두 명에게 주는 올림픽 티켓을 받지 못했다. 아쉬움이 커서였을까. 아시아 쿼터 대회 이후 이한빛은 몸이 일부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다. 결국 5월 세계 쿼터 대회에는 출전도 못 하면서 올림픽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문현경이 출전권을 반납하면서 이한빛은 차순위자 자격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축구 선수였던 두 남동생과 함께 어려서부터 여러 운동을 즐겨 왔던 이한빛은 중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여자 레슬링부가 있는 서울 리라아트고로 진학했다. 늦었다면 늦은 나이인 고등학교 1학년 때 레슬링을 처음 시작했지만 그해 바로 전국대회 시상대에 오를 만큼 타고난 재능과 승부욕이 있었다. 아웃사이드 태클에 능하고 상대방에게 점수를 잘 내주지 않는 점이 이한빛의 강점으로 꼽힌다. 선수들 사이에선 유연하고 상대를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낙지’ ‘문어’로 불린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고교 졸업 후 실업팀 입단을 선택한 이한빛은 2018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서기 시작했다. 2018, 2021년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65kg급)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유배희 여자 레슬링 대표팀 감독과 5일 파리에 도착한 이한빛은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한빛은 올림픽 티켓을 놓친 뒤로 진천선수촌이 아닌 소속팀에서 훈련해 왔다. 파리에 와선 선수촌에 마련된 시설에서 훈련을 하고 7일에는 올림픽 경기장도 처음 둘러봤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이한빛은 자신의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엄마, 하늘에서 보고 많이 기도해 달라”며 각오를 다졌다. 유 감독도 “하늘이 주신 기회인 만큼 감사하게 생각하고 한 경기 한 경기씩 나아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현실적으로 이한빛이 메달을 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위기에 빠진 한국 레슬링을 위해서도 쉽게 물러서진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국에 역대 첫 올림픽 금메달(1976년 몬트리올 대회 양정모)을 안겼던 레슬링은 2021년 도쿄 대회 때 45년 만에 ‘노 메달’에 그치는 등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번 파리 대회에서도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kg급 이승찬(29), 97kg급 김승준(30)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대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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