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층간소음 방지 기술 어디까지 왔나
건설사들, 층간소음 연구소 만들어
바닥재 실험하고 소음 알림 월패드 개발… 층간소음 일으키는 주파수 추적 노력
정부, 소음 검사 의무화 등 규제 강화… “바닥재 비용에 분양가 상승” 의견도
《진화하는 층간소음 차단 기술
‘아파트 공화국’ 한국에서 층간소음은 이웃 간 분쟁의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층간소음은 집 구조마다 전달 경로가 제각각이고 발생 원인도 다양하다. 건설업계는 흡음재 개발, 주파수 추적 등 층간소음 예방을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섰다.
4월 넷플릭스는 영화 ‘84제곱미터’ 제작 확정 소식을 발표했다. 장르는 스릴러로 소개했다. 주인공은 국민 평형이라 불리는 전용면적 84㎡ 규모의 아파트를 마련했으나 매일 밤 층간소음으로 이웃과 갈등을 겪는다. 지난해 9월 개봉한 고 이선균, 정유미 주연의 영화 ‘잠’에서는 아랫집 이웃이 겪는 층간소음이 미스터리 소재로 다뤄졌다.
층간소음은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에서 영화 속 공포의 소재로 다뤄질 만큼 민감하면서도 일상과 밀접한 주제다. 관련 분쟁이 늘어나자 정부는 신축 아파트 입주 전 층간소음 성능 검사를 의무적으로 통과하도록 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섰다. 건설사들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건설사들, ‘층간소음’ 집중 연구
5일 찾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래미안 고요안랩’. 4층 높이의 아파트처럼 보이는 이곳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운영하는 층간소음 연구소다. 복도를 따라 10개 호실이 들어섰는데 거실, 방, 화장실 등 내부 구조는 일반 아파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위적인 층간소음을 발생시켰을 때 호실마다 차이가 나타났다. 위층에서 소음 측정에 쓰는 2.5kg짜리 고무공(임팩트볼)을 떨어뜨리자 기자가 있던 아래층 A호실에선 소음뿐 아니라 발바닥에 진동까지 느껴졌다. 반면 B호실에서 같은 실험을 하니 진동과 소음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B호실 위층 바닥은 두께가 같아도 신발 깔창처럼 탄성이 있는 합성수지(EVA)가 내장돼 있다고 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10개 호실은 바닥 두께, 구조, 건물 하중을 지지하는 방식 등이 달라 이곳에서의 연구는 10개 아파트 단지에서 실험하는 것과 같다”며 “EVA를 활용한 기술은 최고 28층 약 500채 규모로 짓는 부산 동래구 명륜2구역 재건축 현장을 시작으로 적용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DL대덕연구소에서도 층간소음 실험이 한창이었다. DL이앤씨가 개발한 바닥 구조인 ‘D-사일런트 플로어’가 설치된 곳에서 임팩트볼을 떨어뜨렸다. 아래층에 있던 기자에겐 바로 위층이 아닌 2개 층 윗집에서 나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해당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호실로 이동했다. 일부러 발을 크게 구르자 거실에 설치된 월패드에서 “층간소음이 발생했습니다.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벽에 내장된 소음·진동 감지 센서가 바닥의 진동과 소음을 감지해 월패드로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다.
부모가 집에 없을 때 아이들이 층간소음을 낼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미리 입력된 가구주 휴대전화에도 관련 알람이 전송됐다. DL이앤씨는 월패드 알림 기술을 경기 연천군 499채 규모의 한 아파트 단지에 적용했다. 회사 관계자는 “월패드를 설치한 입주자들에게서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설득하기 쉬워졌다는 후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 건물 구조마다 소음 전달 경로 달라
다른 건설사들도 층간소음 해결책을 다방면으로 모색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용인시 기흥구에 전문 연구시설을 짓고 층간소음에 취약한 주파수 대역을 찾고 있다. 이를 활용해 층간소음이 적게 발생하는 평면·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천장, 벽 등 충격음이 전달되는 경로에 진동을 줄일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해 층간소음을 차단하는 방법도 찾고 있다.
GS건설은 초고탄성 완충재, 고밀도 모르타르를 적용한 1등급 바닥 구조를 개발했다. 대우건설은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고 완충재, 모르타르 두께를 늘렸다.
층간소음은 바닥, 벽, 천장 등에 충격을 가할 때 발생하는 소음을 통칭한다. 충격으로 발생한 진동이 상하, 좌우로 전파돼 천장 마감재 등 가벼운 물체를 흔들리게 해 다른 가구가 이를 듣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소음이 처음 발생하는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같은 아파트이더라도 복도식과 계단식, 평형 등 내부 구조에 따라 소리가 다른 방식으로 흡수되고 굴절된다. 건물 하중을 지탱하는 방식이 벽인지, 보와 기둥인지에 따라서도 소음 전달 경로가 달라진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에 따르면 층간소음을 느꼈을 때 실제 발생 장소가 바로 위층인 경우는 65%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위층의 위층, 위층의 옆집, 아랫집 등으로 다양하다.
이처럼 까다로운 과제이다 보니 건설업체들이 아예 공동 연구에 나서기도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3월 현대건설, 삼성물산,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GS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 7곳과 층간소음 해소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개별 건설사가 수주한 재건축, 리모델링 현장에서 층간소음 기술을 공동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층간소음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층간소음 저감을 위해 건설사가 모두 같은 마음으로 뛰고 있다”고 했다.
● 규제 강화하지만 관건은 비용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정부는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17일부터는 건설사 등 사업 주체가 바닥충격음 성능검사 결과를 입주 예정자에게 알릴 의무가 생겼다. 이를 어기거나 거짓으로 알릴 경우 과태료 500만 원이 부과된다.
입주 전 성능 확인도 강화됐다. 2022년 8월 이후 사업계획승인을 받은 30채 이상 공동주택은 시공 이후 성능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해당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자에게 보완 시공 또는 손해배상을 권고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 40채 규모의 도시형생활주택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총 10곳에서 검사를 받았다. 내년 이후부터는 재건축, 재개발로 짓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준공 전 검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나아가 기준 미달 시 준공허가를 받을 수 없게 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준공허가를 받아야 은행 잔금 대출 등이 가능한 만큼 입주 전 보완 시공 등에 나서라는 취지다.
관건은 비용이다. LH 토지주택연구원에 따르면 4등급 바닥 구조를 1등급으로 향상하는 데 추가로 드는 비용은 1채당 540만 원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1등급 성능을 인정받은 바닥 구조를 설치하려면 4등급 수준인 일반 바닥 구조 대비 2∼3배 비용이 더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강화된 층간소음 규제에 대응하려면 분양가가 1채당 2000만 원 가까이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중견·중소 건설사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층간소음 저감 기술이 없어 대형 건설사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LH에서 상용 가능한 보완 시공 기술을 내놓기로 했으나 내년 12월 이후에나 도입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입주 전 성능검사에서 기준 미달 시 보완 시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개수대, 조리 공간 등을 분리하는 ‘아일랜드’식 주방을 갖추려면 기본 전선, 배관 작업 등이 모두 끝나야 한다”며 “보완 시공을 위해 바닥을 모두 들어내는 것은 실무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바닥 슬래브와 천장 사이 배관 등이 오가는 공간에 석고보드를 시공하거나 흡음재를 채우는 방식으로 충격음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음기준 미달 땐 집주인에게 배상… 세입자는 보상 못 받나
층간소음 규제 강화 실효성은? 연말까지 개정안 발의 목표 배상 금액 기준 두고도 이견 건설사 반발 심해 입법 미지수
최근 서울 한 아파트가 입주를 앞두고 실시한 바닥충격음 성능검사에서 소음 기준(49dB·데시벨)을 충족하지 못했다. 입주 전 바닥충격음 성능검사를 의무화한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2022년 8월 시행된 이래 처음 나온 기준 미달 사례다. 관할 구청은 시공사에 보완 시공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주택법에 따르면 성능검사 결과가 소음 기준에 미달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시공사에 보완 시공이나 손해배상을 권고할 수 있다. 강제성이 없다 보니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주택법을 개정해 보완 시공이나 손해배상을 강제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준공을 불허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말까지 개정안 발의가 목표지만 풀어야 할 난제들이 적지 않다.
먼저 손해배상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 논란이 예상된다. 국토부는 손해배상 대상은 소음 기준에 미치지 못한 단지의 모든 입주 예정자로 정할 방침이다. 입주 전이라 실제 소음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만큼 집주인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는 게 적절하다는 논리다.
이를 두고 배상을 받은 집주인이 입주하지 않고 세를 놓으면 실제 소음 피해를 보는 세입자는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손해배상 단지명을 공개하면 부동산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전월세 가격이 조정되면서 (세입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음에 취약한 단지라는 게 알려져 보증금이나 월세가 내려가면 세입자들은 소음 피해를 감수하는 대신 임차료 혜택을 보는 셈이라 간접적인 배상 효과를 누리게 된다는 뜻이다.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도 쟁점이다. 국토안전관리원은 올해 1월 발간한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손해배상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에서 적정 배상액을 소음 기준치 미달 정도에 따라 ㎡당 6만6990∼33만7034원을 제시했다. 국민 평형(전용면적 84㎡)으로 환산하면 1채당 560만∼2800만 원이다. 대규모 단지라면 배상액이 시공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 국토부는 정부 차원에서 손해배상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판단하는 배상액을 정부가 정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가이드라인 제작 여부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완 시공이나 손해배상을 의무화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시공사의 부담 증가가 불가피한 만큼 건설업계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입주민들이 체감하는 소음 개선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소음 기준치가 49dB로 너무 낮다는 이유에서다. 49dB은 조용한 사무실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소음 수준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2005년 이후 웬만한 아파트들은 소음 기준치(50dB) 이내로 지어졌다. 그런데도 층간소음 민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현재 소음 기준치는 당시보다 1dB 강화된 수준이라, 법이 개정돼도 층간소음 민원이나 갈등이 줄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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