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직후 돌연 안보실장-국방장관 인사
인사든 정책이든 “이건 뭐지” 할 때 많아
결국 시스템은 없는 ‘인치(人治)’의 문제
이런 게 반복되면 내각 무기력 심해질 것
윤석열 정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초지종을 알 수 없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정책이든 인사든 일반인들 보기에 “갑자기 이건 뭐지?” 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충분한 설명이 없다. 뒤늦게 해명을 내놓기도 하지만 납득이 잘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최근 국가안보실장과 국방장관 인사도 그랬다.
80일가량 남은 미국 대선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8·15 광복절 경축사의 ‘통일 독트린’ 발표에다 한미일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회의 1주년 공동성명 발표 일정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장호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12일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교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인사라는 게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일일이 공개할 수 없는 숨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개인 능력을 떠나 궁합의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근 특보직을 주고 “헨리 키신저의 역할” 운운하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러니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여름휴가 때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와 편안한 분위기에서 뭔가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얘기부터 4번째 안보실장을 모시게 된 김태효 1차장과 신원식 신임 안보실장이 MB정부 때부터 가까운 사이라느니 하는 등 갖가지 뒷담화도 나오는데, 이 글의 논지는 아니다. 진실도 알 수 없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인사가 대통령 혼자 내린 건지, 누구랑 협의했는지 하는 점이다. 이는 정책 결정, 인사 결정의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사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다. 절차적 정당성뿐 아니라 실질적 정당성을 갖추려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종 결심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총리든 참모든 전문가든 두루 의견을 들을 필요도 있다. 예컨대 “경호처장에서 국방장관으로 직행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 “야당 반대로 국론이 분열되면 국방력 결집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안보실장까지 교체하는 건데 인사 메시지가 모호하다” 등의 우려도 함께 검토됐어야 했다. 그런 다각도의 논의 끝에 결정을 내린 건지, 그냥 뚝딱 이뤄진 건지 궁금한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현 정부에서 중요한 결정이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는 인상 때문이다. 의대 증원 2000명 결정 과정의 미스터리를 다시 꺼내지 않더라도 방향 설정과 장단점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반대 여론에 대한 대응 등 정교한 실행 방안 없이 논란이 큰 의제를 툭 던지고 사후에 수습하느라 한정된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가 보편적 절차나 관행보다는 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이 부각되는 국정 운영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8·15 통일 독트린 TF’도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번 인사를 통해 또 한번 실세임을 보여준 김태효 1차장이 TF를 주도한다는데, TF엔 통일부 장차관도 참여한다고 한다. 결국 신속하고 효율적인 이행을 위해선 내각이 아닌 용산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을 가까이 보좌하는 이들에게 힘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비단 이 정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당연시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내각의 존재 이유는 뭔가. 용산 참모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대통령 의중만 살피고, 그에 맞춰 일선 부처를 일일이 통제하는 일이 반복되면 관료들은 팔짱을 끼게 돼 있다. 굳이 제 역량을 한껏 발휘하려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러 정권을 거칠수록 대통령실이라는 머리는 큰데, 정작 손발은 잘 안 돌아가는 ‘가분수의 나라’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사든 정책이든 관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뭔가 바삐 돌아가는 것 같은데 국정의 핵심 의제가 뭔지는 뚜렷하지 않다. 주요 의제와 곁가지 의제가 마구 뒤섞인 채 터져 나오기 일쑤고 그럴 때마다 공직사회든 여의도 정치권이든 일반 국민이든 모두 용산만 쳐다보고, 용산은 현안 대응하느라 허덕인다. 그러니 국정은 종잡을 수 없고 산만하다. 곧 임기 반환점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용산의 힘을 빼고 내각에 힘을 실어 관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 아닐까. 인사든 정책이든 ‘체계’부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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