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버럭 격노 사라지고 술(酒)도 삼가
野의 극렬한 공격에도 맞싸움 자제하고
정권 지지 기반 염원 방기했다는 성찰도…
문재인 관련 의혹 무대응 기조 변할지 주목
완고하고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온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에 변화의 작은 싹이 움트고 있다. 2년여 만의 변화 조짐이다.
첫째는, 최근 들어 격노 버럭 호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참모 등 아랫사람에게 화를 내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국회, 특히 야당과 맞상대해 싸우지 말라는 기조가 뚜렷하다고 한다. 기존에는 공격당하면 즉자적 감정적 반응을 보이곤 했던 게 사실이다. 화가 난 대통령이 친윤계 의원들에게 전화를 하면 충성파들이 나서 소리 높여 대신 싸우는 일이 되풀이됐다.
그러나 최근 이런 대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야당 주도의 인민재판식 청문회, 상임위 막말이 이어지고 ‘김건희 살인자’론, 친일 공세 등이 계속돼 왔지만 대통령실은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유감을 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야당의 싸움에 말려들지 말자는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189석 야당은 힘자랑을 하게 돼 있는데 대통령이 싸움에 응하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허공에 대고 소리치다 결국엔 다수 국민과 부딪히게 된다는 판단인 것.
실제로 정청래 최민희 등의 악 쓰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본인들의 얼굴에 오물을 끼얹은 채 힘을 잃었다. ‘살인자’를 외친 전현희도 개딸들에겐 점수를 땄지만 대다수 상식을 지닌 국민 사이에선 혀를 차는 대상이 됐다.
만약 대통령실이 야당과 똑같은 톤으로 악다구니 했으면 언론은 양비론으로 갔을 텐데 조용히 대응하니 야당의 과격성 극단성만 부각된 것이다.
또 하나 작은 변화는 대통령이 술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부대 방문 때의 막걸리 건배, 군 간부들과의 격려 회식 등에서는 술이 등장하지만 사적인 술자리는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최근 대통령 관저를 방문했던 인사들은 예전과 달리 이번엔 술 없이 저녁 식사만 하고 왔다고들 전했다. 경호 라인 쪽에서도 같은 얘기가 들려온다.
물론 이는 미세하고 지엽 말단적인 일이다. 지도자가 분노를 절제하고 술을 자제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덕목이어서 이를 두고 변화 운운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씁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리더십의 고질적 문제가 버럭하는 성미와, 무리수를 둬서라도 성질대로 끌고 가려 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눈길 가는 변화의 싹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정권 정체성 찾기 움직임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정치로 불러내 대통령으로 뽑아준 지지자들의 핵심 요구가 무엇인지 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 정부 출범에 담긴 염원의 핵심은 공정과 상식의 복원,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잘못을 심판해 자유민주주의 토대를 다시 확고히 세워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윤 정부는 이재명만 물고 늘어질 뿐 문 전 대통령 관련 온갖 의혹들에 대해서는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성찰이 있었으며 광복절 기념사에서 ‘자유’를 특히 강조한 것도 그런 연장선상이라고 한다. 검찰총장 교체 등과 맞물려 향후 문 전 대통령 관련 수사가 주목되는 배경이다. 검찰 경찰 인사에서도 공안 기획 기능 회복에 비중이 주어지고, 국정원 정상화에도 대폭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만약 이런 변화의 조짐이 흐지부지되고, 근본적 리더십 쇄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이는 정권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보수진영 전체와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미래에 먹구름을 예고한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좌우, 여야 간에 정신적 내전 상태인 극한 대치 상황에서 보수 성(城) 내의 백성들은 어느 곳 하나 마음 둘 곳 없는 게 현실이었다.
적군의 백만대군이 몰려오는데 이를 막으라고 추대한 총사령관은 부인·친구들만 감싼다면, 사령관으로 옹립했던 백성들은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총선 이후엔 일절 뉴스도 안 보고, 모임 자리에서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더 이상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관심도 없다”며 화제를 바꿔버리는 ‘등 돌린 지지자’들이 수두룩하다.
진정한 리더십 변화의 핵심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에 대한 겸허한 마음이다.
임기 후반기는 절대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보수 정권 재창출의 밑거름이 될 각오로 희생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의 소통, 민생정책, 그리고 부인 등 가족 문제에 있어 공명정대함의 자세로 자기 팔이라도 잘라내겠다는 의지가 필수적이다.
당정관계에 임하는 철학도 바꿔야 한다. 이준석 축출에서부터 한동훈 사퇴 종용까지 당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장기판 졸(卒)로 여겼던 행태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해 행위였는지 결과가 자명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수십 년 검사 생활에서 굳어진 스타일이 바뀌겠느냐며 기대를 접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더구나 금연이나 금주처럼 본인의 의지만으로 실천하는게 아니라 리더십의 변화는 수많은 인간관계 및 현안들과 상호관계를 맺어가면서 이뤄져야 하므로 특단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열매 맺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권 후반기는 전반기보다 여건이 더 어렵다. 야당의 김 여사 특검 등 정치 공세가 거세지면 대응 과정에서 다시 강경론자들이 득세해 기존의 스타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역(周易)에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해결하기 힘든 극한 상황에 몰리면 스스로 변화의 욕구가 강하게 생겨나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이 특유의 결단력과 실천력, 공복(公僕)의식을 발휘해 변화해야 할 시기가 백척간두, 녹아가는 유빙(流氷) 위에 서 있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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