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한 양돈농장에선 직원 7명이 돼지 7500마리를 거뜬히 키운다.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카메라 덕분이다.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돼지 숫자와 무게를 알아서 측정하고, 활동량을 따져 아픈 돼지를 찾아준다. 일꾼들이 겁에 질린 돼지를 한 마리씩 옮겨 무게를 잰 뒤 출하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진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감귤 수확기에 지능형 운반 로봇을 빌려 쓰는 농장이 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과 궤도형 바퀴가 장착돼 노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로봇이 몸값이 뛴 외국인 일꾼을 대신한다.
▷AI, 자율주행, 로봇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한 애그테크(AgTech·첨단 농업)가 노동 집약적인 농업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부르고 있다. 180여 년 전 쟁기로 출발한 세계 1위 농기계 기업 존디어는 요즘 국내 투자자들에게 ‘농슬라’(농업의 테슬라)로 통하는데, 최신 제품들이 파종부터 제초, 수확까지 모든 걸 알아서 할 정도다. 수천 년의 농업 역사가 AI로 혁명기를 맞은 셈이다.
▷고령화도, 영세화도 심각한 한국 농업은 이런 변화가 더 반갑다. 올 6월에는 국내에 첨단 기술을 망라한 디지털 농업 시범단지가 축구장 76배 크기로 문을 열었다. 논에서는 디지털 허수아비가 음파를 쏴 새들을 쫓고, 밭에서는 운전자 없는 트랙터가 혼자 일을 한다. 논밭 배수로는 관제센터 AI의 통제를 받아 자유자재로 물 공급을 조절한다. 그동안 실내 재배시설에서 주로 이뤄졌던 스마트 농업이 이젠 지붕 없는 노지로 확장된 것이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K푸드는 물론이고 푸드테크(식품+기술)에서는 벤처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 창업가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경영학도 출신 임재원 대표(34)가 푸드트럭으로 시작한 피자 브랜드는 8년 새 7개국에 1000호점을 냈다. 20대 때 황학동 주방거리를 발로 뛰며 3분 안에 피자 6개를 구워 낼 수 있는 화덕을 만든 덕분이다. 포스텍(포항공대)에서 인공장기를 연구하던 한원일 대표(36)는 배양육으로 눈을 돌려 마블링이 선명한 덩어리 형태의 배양육을 개발해 냈다. 실험실에서 키운 배양육이 다짐육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해외에서는 빅테크 공룡들까지 농업에 뛰어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클라우드 기반의 농업 플랫폼을 선보였고 구글은 농업 스타트업에 1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거대 테크기업들이 농업의 미래 성장 가치를 높게 본 것이다. 2030년까지 기술 인프라 혁신을 통해 농업 분야에서 5000억 달러(약 600조 원)의 부가가치가 새로 창출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K농업이 AI발 농업 혁명에서 앞서갈 수 있도록 애그테크에 승부를 거는 기업과 청년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야 할 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