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층까진 완강기로 탈출… ‘스파이더맨’처럼 벽 짚고 내려와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7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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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고층건물 불 나면 어떻게 탈출할까
본보 기자, 6m 높이서 완강기 체험… 공포감에도 장비 덕에 안전하게 착지
사용 전 지지대 흔들림 반드시 확인… 배 벽쪽에 두고 반동 없이 내려와야
숙박시설 ‘간이 완강기’는 1인 1회용… 2명 이상 타면 헐거워져 추락 위험
완강기 사용 어렵다면 화장실로 대피… 젖은 수건으로 문틈 막고 119 신고를

《화재 현장 ‘완강기 탈출법’

지난달 경기 부천시 원미구에서 9층짜리 호텔 화재로 총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나에게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자가 직접 완강기를 타보고 연기로 가득 찬 복도를 탈출하는 등 화재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알아봤다.》





“거참, 초등학생도 한다니까요. 발만 떼면 돼요.”

이 소방관 아저씨가. 완강기 벨트를 몸에 두르는 것까진 괜찮았다. 놀이기구 타기 전 기분도 들고. 그런데 문제는 6m라는 높이였다. 건물로 치면 약 2층 높이. 제3자가 보면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위에 서 있으니 눈앞이 아찔했다. 줄 하나에 매달린 채 뛰어내린다고? 초등학생도 한다고?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단 말이다.

몇 분을 안절부절 망설였다. 차라리 ‘못 하겠다’고 포기하고 돌아갈까. “부천 화재 사건을 계기로 완강기 체험을 하고 오겠다”고 보고했을 때 미묘한 표정으로 “굳이 말리진 않을게”라고 대꾸하던 차장 선배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나에게 왜 그랬을까. 이제 와서 “저 무서워서 못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하면 무슨 대답이 돌아올까. 여기서 깨지나, 거기서 깨지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유치원생들이 해맑게 “누나! 저도 완강기 탈 수 있어요”라고 외쳐댔다. ‘그러시다면 대신 좀 뛰어주겠니.’

어차피 인생은 한 번.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옛 선조들에게 빙의해 몸을 허공에 던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완강기는 느린 속도로 나를 지면 가까이 스르륵 내려놓기 시작했다. 번지점프처럼 훅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심장은 여전히 폭발 직전이고, 혈관 속의 피는 시속 200km로 흐르는 것 같았다. 가슴에 고정한 로프가 혹시 벗겨지면 어쩌지. 6m에서 떨어진다면 타박상이나 골절로 끝날까, 아니면 다발성 골절로 인한 추락사로 끝날까. 혹시 내가 살아서 보는 마지막 사람들이 너희니. 유치원생 친구들아. 반가웠다. 그사이 몇 초가 흘렀다. 어느새 발바닥이 땅에 닿아 있었다. 살았다. 해냈다. 엄지 척!

● 10층 이하 건물서 탈출 땐 완강기가 효과적


지난달 발생한 경기 부천 호텔 화재 사건 이후 시민들의 우려와 경각심이 커졌다. 그 호텔에는 완강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사고 당일 사용한 투숙객은 아무도 없었다. 기자는 소방청과 인천 국민안전체험관의 협조를 받아 올바른 완강기 사용법을 비롯한 실내 화재 시 주의 사항을 체험하며 알아봤다.

많은 이들이 호텔 등 숙박시설이나 빌딩에서 완강기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실제 써 본 사람은 드물다. 완강기는 10층 이하의 높이에서 고립됐을 때 사용하는 대피 기구다. 법적으론 모든 건물의 3층부터 10층까지 설치해야 한다. 특히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은 객실당 완강기 1개, 또는 2개 이상의 ‘간이 완강기’를 구비해야 한다. 체험관에서 기자의 교육을 담당한 김종원 소방장(43)은 “일반 완강기는 교대하면서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간이 완강기는 한 명이 사용하면 끝이라 숙박시설엔 최소 2개를 구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이 완강기는 대당 1명만 탈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완강기는 크게 지지대와 완강기 박스로 구성된다. 완강기 박스에는 지지대에 걸 고리대, 몸을 고정할 벨트와 와이어 등이 담겨 있다. 창문으로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통상 창문 근처에 설치된 경우가 많다. 김 소방장은 “간혹 이사 갈 때 완강기 박스만 가져가거나, 혹은 인테리어 한다고 지지대를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다. 완강기와 지지대는 한 세트라 항상 같이 구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강기 사용법은 한 번 해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먼저 지지대를 손으로 밀고 당겨 보면서 흔들림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지지대가 흔들린다면 완강기를 쓰면 안 된다. 무게를 버티지 못해 지지대가 부서질 수 있다. 확인 결과 흔들림이 없다면 완강기 고리를 지지대에 걸고, 창문 밖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후 줄을 밖으로 떨어뜨리면 된다. 완강기에 부착된 안전벨트는 가슴 높이까지 착용하고, 고정링을 가슴까지 고정시켜 헐렁하지 않은지 확인하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 반동을 주거나 ‘만세’ 자세는 금물

지난달 27일 인천 국민안전체험관에서 동아일보 이채완 기자(왼쪽)가 완강기 체험을 하고 있다. 완강기 사용을 위해선 흔들리지 않는 지지대와 지지대를 걸 고리, 와이어, 가슴벨트 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인천=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지난달 27일 인천 국민안전체험관에서 동아일보 이채완 기자(왼쪽)가 완강기 체험을 하고 있다. 완강기 사용을 위해선 흔들리지 않는 지지대와 지지대를 걸 고리, 와이어, 가슴벨트 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인천=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준비 과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막상 체험을 위해 6m 높이로 올라가니 착잡했다. 체험관도 이 정도인데 실제 건물에서 뛰려면…. 실제론 창가에 걸터앉은 뒤 등이 바깥쪽으로, 배가 벽 쪽으로 향하도록 한 뒤 천천히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손으로 짚으며 내려와야 한다. 박기홍 소방교(34)는 “완강기 지지대는 원칙적으론 150kg까지 권장하고 설계 하중은 350kg까지 견딜 수 있다”며 기자의 몸무게는 아마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안심시켰다. 그러곤 “지지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완강기에 의존해 내려오면 된다”고 설명했다.

몇 시간 같은 몇 분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6m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반동을 줘선 안 되며, 두 팔을 위로 뻗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반동을 주면 로프가 헐렁해져 빠질 수 있다. 두 팔을 모두 위로 치켜들면 로프가 쏙 벗겨질 수 있다. 그 대신 두 팔을 앞으로 뻗어 벽을 천천히 짚어야 한다. 화재 상황에서는 불꽃이나 파편이 눈에 튈 수 있으니 시선은 아래를 보면서 내려와야 한다.

완강기는 성인이든 어린이든 반드시 1명씩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주의할 점이다. 커플 번지는 있지만 커플 완강기는 없다. 2011년 경기 고양의 한 모텔에서 불이 났는데 투숙객 2명이 함께 하나의 완강기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추락사했다. 김 소방장은 “완강기는 여러 명이 한꺼번에 타면 헐거워질 수 있기에 원칙상 한 번에 한 명이 사용해야 한다”며 “아이가 있는 경우에도 외부에 아이를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가정하에 아이를 먼저 태워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 복도에 유독가스가 가득 찼다면

만약 불이 났는데 완강기 사용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소방관들은 “무리해서 나가지 말고 실내에 남아 119 대원들의 안내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무작정 탈출을 시도할 경우 유독가스와 연기 탓에 앞을 잘 볼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질식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날 화재 연기가 가득 찬 복도 상황에서 탈출하는 체험도 했다. 멀쩡한 복도를 걸어 나갈 때와 비교하면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복도의 길이는 약 50m. 평소라면 30초 내에 통과했을 곳이 화재 및 연기 상황에서는 1분 30초가 넘게 걸렸다. 연기 때문에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피난구 유도등에서 나오는 침침한 초록색 불빛을 따라가야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암흑이었다.

기자는 어둠 사이로 벽을 짚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이동했다. 어둡고 연기가 차 있고 폐쇄된 공간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웠다. 고작 체험, 시뮬레이션에 불과했지만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당황스러웠다. 아까 소방관님이 뭐라고 알려주셨더라. 머릿속이 하얘지고 탈출 요령은 까맣게 잊었다. 원래라면 젖은 손수건, 물티슈 등으로 코와 입을 막고 낮은 자세로 대피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치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처럼 걸어가기 바빴다.

구불구불한 길 끝에 겨우 다다르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박 소방교는 “연기가 차오르면 복도에서 계속 헤매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또 “실제 상황에서는 당장 불꽃이나 연기가 안 보이더라도 화재 경보음이 울리면 신고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탈출 어렵다면 화장실로 대피

만약 10층보다 높은 건물의 고층에 갇혔다면 특별피난 계단을 이용하거나 피난 구역으로 대피할 수 있다. 건축법에 따라 지상 11층 이상(공동주택 16층 이상) 또는 지하 3층 이하 건물에는 특별피난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특별피난 계단은 일반 계단과 달리 문이 달린 출입구가 있어 연기를 차단할 수 있다.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은 30층마다 피난 구역이 설치돼 있다. 피난 구역에선 최대 3시간을 버틸 수 있고 내부에는 물, 방독면, 소화기 등 필수품이 마련돼 있다. 피난 구역에는 화재 상황에도 운행이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있어 이를 이용한 탈출도 가능하다.

만약 모든 탈출 시도에 실패해 그대로 실내에 남아야 할 경우에는 ‘화장실’을 떠올려야 한다. 불이 나면 불에 타 죽는 사람보다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지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때문에 화장실 문틈을 젖은 수건 등으로 막고 기다리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박 소방교는 “소방관이 출동해도 생존자의 정확한 위치 파악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119에 계속 전화해 나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천 호텔 화재 당시 기적적으로 구조됐던 20대 대학생 A 씨는 복도에 연기가 퍼지는 것을 보고 탈출하는 대신 모든 문을 닫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러곤 119에 전화해 소방대원의 안내에 따라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문을 젖은 수건으로 막고 샤워기를 틀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수막을 형성해 유독가스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소방대원의 안내에 따라 기다리던 A 씨는 소방관들에게 구조돼 살아서 호텔을 나왔다.

교육을 진행한 소방관들은 무엇보다 사전에 각 지역에 마련된 안전체험관 등을 방문해 화재 대피 교육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해보는 것은 천양지차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엔 완강기 체험 등이 가능한 안전체험관 13곳과 소방서 77곳이 있다. 체험을 원한다면 가까운 소방서 또는 안전체험관에 체험 가능 일정을 문의하면 된다. 만약 직접 방문하기 어렵다면 사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 그림과 영상을 소방청 누리집 혹은 소방청 유튜브 채널(소방청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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