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이런 인연은 드물 거다. 24년 전, 지금까지도 최고 역작으로 회자되는 대하 드라마에서 160회가량 함께 등장했다. 극 중 같은 주군을 모신 둘은 늘 화면에 같이 잡혔다. 한 사람이 대사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의 대사가 이어졌다. 밥도 같이, 잠도 같이, 촬영도 같이, 늘 붙어 다녔다. 주말 2회 방영하는 드라마였으니 준비 기간을 더해 3년 가까이 같은 인생 궤도를 돌았다.
드라마 인기 덕에 지금도 마주치는 사람들은 둘을 극 중 역할로 부른다. 한 명을 얘기하면 “또 한 명은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기분 좋다. 더군다나 둘의 배역은 주군을 위해 몸 바치며 의리와 우정의 대명사가 됐다. ‘인생 배역’이어서 그렇게 살려고 했고 살아 왔다. 친형제간도 싸워서 안 보는 경우도 많다는데 의형제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배우 김학철(65)과 김형일(64)의 관계가 이렇다. 2000년 시작돼 200회 방송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둘은 고려 태조 왕건의 최측근이자 개국 1등 공신인 박술희와 신숭겸 장군 역할을 각각 맡아 드라마 인기에 한몫했다.
‘성질이 용감하고 과감했다.’
역사책 ‘고려사’는 박술희를 이렇게 표현했다. 김학철도 호탕하고 통이 크며 대담하다. 신숭겸은 건장하고 힘이 좋으면서도 매사 침착하고 진중했다는데 김형일도 몸집 좋고 배포 있으며 중후하고 울림이 큰 중저음에 사람을 보듬는 여유까지 갖췄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캐스팅이다.
“형일 씨. 여기에요.”
“학철 씨.”
11일 둘은 서울 지하철5호선 마포역 1번 출구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한 김학철이 김형일을 마중 나왔다. 그런데 서로 존대말을 쓴다. 김학철이 한 살 많은 데다 연예계 데뷔도 조금 빨랐으니 반말을 해도 괜찮을 텐데 20년 넘게 만났으면서도 서로 존대한다.
“형일 씨는 연예인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에요. 허세라는 게 없어요. 모범생이죠. 이런 형일 씨를 지켜주고 싶어서죠. 동생이라고 ‘야야’ 하면 빈정 상할 수 있어요. 서로 존대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봅니다.”(김학철) ● 잊지 못할 캔맥주 두 캔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 김학철은 1978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김형일은 1987년 CBS 성우 15기로 연예계에 들어섰고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가 됐다. 1990년 임권택 감독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신마적 역할로 세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마주친 적은 없던 둘은 ‘태조 왕건’에서 처음 만났다. 신숭겸 역할 후보는 몇 명 있었는데 감독이 김형일을 보고 바로 오케이를 했다.
“그냥 적역이었죠. ‘삼국지’ 속 인물에 어울리는 연기자 설문조사에서 김형일은 부동의 관우였으니까요. 장비는 저와 몇 명이 경합이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형일 씨는 (방송사) 공채를 두 번이나 합격했네. 부럽다.”(김학철)
“괜히 시험봤나 봐요. 그때는 어떻게든 바닥부터 올라가려고 했으니까. 바로 연기할 수 있었는데 왜 시험을 봤을까, 참 나.”(김형일)
큰 웃음이 터진다.
드라마 초반 왕건이 송악에서 처음으로 박술희, 능산(후에 신숭겸)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왕건은 이들의 무예 실력에 놀란다. 둘은 왕건의 반듯함에 끌려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말한다. 극에서는 신숭겸이 박술희보다 나이가 많다. 왕건은 “천하 용장과 호걸을 얻었다. 하늘이 내리신 선물”이라며 의형제를 맺는다. 의리의 시작이다.
“그 장면이 나오는 회가 방송될 때 서울 남대문시장에 가봤어요. 난리가 났더라고. 삼겹살을 구워 드시던 시장 상인들이 같이 먹자고 저를 잡아 끄시더라고요. 박술희가 변 사부(왕건의 무예 스승)와 대결하는 장면에서 누가 이겼냐고 여기저기서 물어보시고, 궁금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하실 정도였죠. 대단했습니다.”(김학철)
“대본이 나왔는데 그 다음 대본이 궁금할 정도인 거예요. 광고도 많이 찍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2박 3일간 촬영을 해도 힘들지 않았어요.”(김형일)
두 사람한테도 의미가 큰 촬영이었다.
“형일 씨 기억나요? 그 장면 찍고 (경북) 문경 세트에서 형일 씨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내가 같이 타고 올라올 때에요. 저는 매니저가 없었으니까. 형일 씨가 ‘목 마르지 않아요?’ 하더니 구멍가게에서 맥주 두 캔을 사 갖고 온 거야. 야, 그 장면 찍고 나서 마셨는데 너무 맛있는 거죠.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마셨어요. 인생 맥주라니까.”(김학철)
“진짜 맛있었어. 진짜.”(김형일)
“캔맥주 원샷. 완전 엊그제 같아요. 형일 씨가 ‘학철씨, 이거 마셔 봐요’라고 해서 정말 고마웠거든요. 캔에서 입을 못 떼겠더라고. 촬영하면서 땀을 너무 많이 흘렸잖아. 그때 그 맥주로 우린 완전히 친해진 것 같아. 정말 의형제가 된 계기죠.”(김학철)
● “신숭겸 죽었을 때 흘린 눈물은 연기가 아니었다오”
고려 첫 황제가 된 왕건에게 후백제 견훤과 벌인 공산(현 대구) 전투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직접 전투를 지휘했지만 대패했다. 목숨만 살았다. 아끼던 장수 8명을 잃었다.
대구 팔공산은 왕건을 살리고 장렬히 전사한 이 8명을 기린다고 한다. 그중 신숭겸이 있다. 신숭겸은 사방으로 포위된 왕건을 탈출시키기 위해 황제의 갑옷을 입고 황제의 백마를 타고 적을 유인하고는 끝내 숨졌다. ‘태조 왕건’ 161회다. 후백제군은 왕건의 수급을 취해 견훤(서인석 역)에게 보낸다. 견훤은 왕건이 아니라 신숭겸임을 확인하고 그의 충성심에 탄복한다.
-신숭겸이 황제 복장을 하고 왕건 앞에 나타나 눈물로 ‘형님 폐하’의 대업을 바란 뒤 적지로 향하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시청률도 대단했어요. 왕건 역할 최수종은 “아우야, 아니 된다” 하면서 눈물, 콧물, 침까지 흘리는 오열 연기를 펼쳤어요.
“왕건과 신숭겸의 마지막 신은 무조건 한 번에 오케이 됐어요. 감정을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에 다시 찍을 수도 없었죠. 어떻게 남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제가 생각해도 신숭겸이 대단해요. (최)수종이도 저하고 헤어질 때 울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죠. 정이 엄청 든 데다 서운함까지 담겼다고 봐요. 참, 공산 전투 마지막 촬영하고 제가 ‘군에서 제대한 것 같았다’고 했어요. 문경에서 거의 3년을 있었으니 말이죠.”(김형일)
“맞아요. 우리는 소위 ‘문경지리부도’를 꿰고 있었던 거야. 순대국집이 어디고, 세탁소가 어디고…. 그 지역에 태조 왕건 상호 딴 집도 많아. ‘왕건식당’부터 해서.”(김학철)
“학철 씨도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 알려 드릴까요?”
김형일 눈이 반짝거린다.
“제가 죽고 나서 후백제가 신숭겸 수급을 견훤에게 가져갑니다. 견훤이 그 수급을 바라볼 때 화면에 눈 뜨고 죽은 신숭겸 얼굴이 잡혀요. 그런데 그 얼굴이 만든 게 아니에요. 제가 실제로 틀 밑에서 머리를 집어 넣고 진짜 눈 뜨고 있던 거예요. (전부 폭소) 만들 시간이 없었으니까.”(김형일)
“와, 그게 가짜가 아니고 진짜였구나. 전혀 몰랐다. 하하하”(김학철)
-신숭겸이 전사한 뒤 왕건이 겨우 살아 돌아왔을 때 박술희가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박술희는 공산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순간은 연기하는 현실을 벗어났다고 할까. 정말 의형제를 잃은 것처럼 빙의가 된 거지. 어떻게 연기를 해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의도하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집중한 거예요.계산한 연기가 아니고 기운이죠. 신숭겸의 죽음은 극 전체의 하이라이트라고 봐요. 인간은 죽음에 대해 열등감과 두려움을 느끼거든. 안 죽어 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자기 자신이 아닌 주군을 위해서 죽어?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컸을 거예요.”(김학철)
-신숭겸 역할이 사라지면서 혼자 촬영하게 됐는데 외롭지 않았습니까.
“희한한 게 드라마 내내 진짜 형제가 만나는 것 같았어요. 서로 연기하면서도 좋아하는 농도가 달라요. 시청자들도 그렇게 보셨다고 해요. 당연히 형일 씨가 빠지니 텅 빈 느낌이었죠. 그런데 신숭겸의 평산 신씨 가문 사람들이 촬영 현장이든 다른 곳이든 응원을 해 주더라고요.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올 정도였으니.”(김학철)
● 면천 박 씨 박술희가 평산 신 씨 시조급 대우 받다
신숭겸 원래 이름은 능산이다. 왕건이 황제가 되고 황해도 지역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능산의 활쏨씨에 감탄해 그 자리에서 신숭겸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래서 신숭겸은 황해도 평산 신 씨 시조가 됐다. 신숭겸이 묻힌 곳은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 근처에 유명한 ‘박사 마을’이 있는데 평산 신 씨 후손들이 많이 산다. 드라마 덕에 의성 김 씨 김형일은 평산 신 씨 VIP가 됐다. 드라마에서도 신숭겸이 죽고 이례적으로 신 씨 가문 이력을 내레이션으로 오래 설명했다.
“한번은 신 씨 가문 시제를 지내는데 저를 초대했어요. 그쪽 요청으로 신숭겸 갑옷을 입고 참석한 적도 있어요. 제일 상석에 가문 어르신이 앉고 그 다음 자리에 제가 앉았어요. 뿌듯한데 일단 정신이 없죠. 하하하. 아래를 보니까 한참 어르신들이 계시더라고요. 이 집안과 인연이 큽니다.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으로 나왔잖아요. 신 장군도 평산 신 씨입니다. 보통 인연이 아닌 겁니다.”(김형일)
“고려 개국공신 박술희는 후에 면천부원군으로 봉해져서 면천 박 씨 시조가 됐거든. 그런데 박술희가 현실에서는 평산 신 씨 ‘준(準)시조’가 됐다니까. 하하. 자기 선조하고 의형제를 맺었다고 이유없이 좋아해주는 거예요.”(김학철)
-공산 전투에 나서지 않은 박술희가 만약 위기에 처한 황제를 신숭겸과 같이 모시고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겠죠. 당시 역사는 신숭겸을 선택한 거예요. 드라마로도 내가 있으면 시선이 분산됐을 거예요. 공산 전투 포커스는 신숭겸이었어요. 대신 나는 상주 아자개성(城)에서 성주와 ‘술희! 왔어?’, ‘머루주 한잔 올리겠습니다. 상부 어른’ 하면서 주목과 사랑을 받았잖아요. 의형제끼리 나눠 가져야지. 하하.”(김학철)
● 서로 부러운 게 많아 존경하는 ‘결의형제’
둘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만나려고 한다. 만나서 둘만 아는 얘기를 하는 게 낙이다. 한 얘기 또 해도 좋고, 그러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땡 잡은’ 거다. 인생 묘미다. 술 안주, 밥 반찬이다. 너 잘 나고, 나 못났니 타령하면서도 기분 상하지 않는다. 내가 못 가진 것 그대가 가져 좋고, 한 번쯤 장난으로 질투 삼아 염장을 질러 본다. 사는 얘기하다 다시 ‘태조 왕건’ 추억으로 튼다.
“그렇구나. 그런데 신숭겸은 워낙 존재감이 크니까 곁가지가 필요 없는 거지. 나는 짝사랑이잖아요. 한 번은 (김)갑수 형이 그러더라고. ‘너는 로맨스가 있어서 좋겠다’. 하하. 그 형은 스님 종간 역이었잖아요. 나는 머리를 빡빡 밀었는데 신숭겸은 머리도 길게 따고 아주 멋있었어요. 또 생각나네. 내가 대주도금 낭자에게 푹 빠져서 헤맬 때 신숭겸이 와서 구해줬잖아. 신숭겸이 ‘오늘 왜 그리 덤벙되는가’라면서 근엄하고 멋있게 꾸짖어요. 그래도 박술희는 바보처럼 ‘형님, 저 꾀꼬리 같은 목소리, 선녀가 하강한 것 같지 않소이까?’라고 하지. 그러다 군사 절반을 잃고는 왕건한테 불려 가서 된통 혼이 난 거야. 이어지는 장면이 나도 너무 서운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최수종한테 엄청 삐치셨어요. 왕건이 박술희한테 그러는 거야. ‘그 얼굴에도 여자를 생각하는가.’ (모두 포복절도) 와, 그 장면을 우리 어머니가 보시다 난리가 난 거예요. 최수종 가만 안 둔다고. ‘우리 아들이 어째서. 장동건보다 낫지’ 하시는데…. 말리지를 못하겠는 거야. 그렇게 ‘극대노’하는 거 처음 봤어요.”(김학철)
“그래도 부럽더라. 하하.”(김형일)
-연말 KBS 연기대상 조연상은 김학철만 받았습니다.
“상복은 정말 더럽게 없어요.(모두 웃음)”(김형일)
“신숭겸이 ‘러브 라인’을 탔으면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김학철)
김학철은 연극 ‘청부’로1990년 제27회 동아일보 동아연극상 연기상(남자)을 수상했다.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제서는 영화 ‘본투킬’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KBS 연기대상까지 상복이 제법 있다. 김형일은 바닥에 깔리는 저음으로 “요즘이었다면 신숭겸과 박술희 공동 수상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애매모호해진 분위기를 정리한다. 김학철은 “형일 씨한테 부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 잘 타는 게 제일 부러웠다. 형일 씨는 목줄을 한손으로 잡고 질주한다”며 의형제를 다시 치켜세운다.
-박술희는 말 타는 게 특별했다면서요.
“왕건하고 장군들 하고 말을 타면 내 말만 샛길로 빠져 혼자 가요. 하하. 그 때 신숭겸이 제일 통쾌하게 웃긴 했어요. 촬영하다 말한테 ‘어디 가니, 어디 가’를 한두 번 한 게 아니라니까. 미쳐 돌아버렸죠. 나중에는 말 한 필 내어 달라고 해서 혼자 연습했다니까요.”(김학철)
“원래 내 몸을 말 걸음하고 리듬을 맞추면서 타야 하거든요. 그런데 박술희는 엉덩이와 박자가 따로 노는 게 보여. 하하. 뒤에서 보면 통통통통 튀면서 타는 거지. 다행히 대머리라서 철모가 안 보이니까 다행인 거죠.”(김형일)
“하하. ‘통아저씨’ 허리 튕기는 것 있잖아요. 그런 거지. 형일 씨가 부드럽게 얘기한 건데 스태프들한테는 엄청 구박을 받았어요. 최수종 씨 잘 타지, 형일 씨는 한 손으로 타지. 왕건과 우리 둘이 삼각편대인데, 제가 못 타면 안 되잖아요. 형일 씨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배웠어요. 극에서 신숭겸이 나를 구하러 왔잖아요. 그때 나는 역사와 현실을 혼동했어요. 진짜 ‘나를 구하러 왔구나’ 생각했어. 형일 씨는 모를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만나는 겁니다.”(김학철)
“말이 영리하게 사람을 가리거든요. 올라가서 어리버리하면 말이 고개를 돌려 쳐다봅니다. 하하. 학철 씨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수종이는 말 타고 돌격하라고만 했지, 말등에서 칼질은 우리가 다 했어요. 하하.”(김형일)
● 인생 부(副) 캐릭터도 가진 ‘우리’
가수라면 히트곡 하나 얻기 쉽지 않은데 둘은 인생 최고 캐릭터 말고도 크게 각인된 부(副) 캐릭터가 있다. 김형일은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 열연했다. 몇 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강렬했다. 김재규 역할은 세간의 관심을 온통 받는다. 이 역을 맡은 배우들끼리도 비교 된다. 준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촬영 현장에서도 동선을 완전히 숙지하고 몰입해야 한다.
김학철은 시청률 ‘대박’이던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조병옥 박사를 맡아 한 번 더 화제가 됐다. 외모와 말투가 판박이어서 조 박사를 아는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둘 다 연기력만으로 ‘태조 왕건’의 의형제를 잠시 잊게 했다.
“당시 전두환 역할을 맡은 (이)덕화 형님이 ‘중요한 배역이 있다. 짧고 굵게 한 번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 역할이 김재규였어요. 딱 드는 생각은 ‘하면서도 욕먹을 수 있지 않을까’였죠.”(김형일)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조병옥 박사 연기에 감동해 직접 연락을 했다면서요.
“이 전 의장님 얘기로는 제가 조 박사하고 똑같다는 거예요. 한참 ‘야인시대’ 할 때 63빌딩 중식당에서 저녁을 하자고 하세요. 의장님이 저를 식당에서 보시더니 대뜸 ‘조 박사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하시는 거야.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조 박사로 빙의했죠. ‘이봐, 만섭이. 의원 되고, 국회의장까지 되어 있구만’이라고 받아쳤죠. 의장 비서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의장님은 한참 웃으시면서 좋아하셨어요. 의장님 말씀이, 조 박사가 말년에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할 무렵 전화를 주셨대요. ‘만섭이, 수술 잘 끝났어. 돌아가면 ‘용금옥’에서 한잔 하지.’ 그러고 얼마 안 지나서 돌아가셨다고요. 통곡하셨답니다.”(김학철)
서로가 공유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계속 만나길 잘했다. 안 만났으면 그날들은 묻혔을 테고, 기억을 잃을 뻔했다. 추억마저 남지 않았을 수도.
“진짜 행운이에요. 그런 드라마에서 만났다는 건. 드라마 100~200편 한 것보다 ‘태조 왕건’에서 형일 씨 만난 게 최고야. 우리는 평생 갈 거예요. 돈이 조금 있어도 쓸 친구가 없다면 슬픈 인생인데 저는 형일 씨 덕분에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요.”(김학철)
“현실에서도 나를 1순위로 늘 대접해주는 박술희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화답하는 김형일. 아직 6공화국이 끝나지 않아 ‘제6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들이 어떤 역을 맡을지도 기대된다. 어느 역에 어울릴까, 상상도 재밌다. 둘의 말이다. 앞으로도 둘은 보물처럼 서로를 아낄 것이다.
-김형일에게 김학철이란?
“경쟁자이자 친구죠. 전혀 다른 연기를 하니까 배울 것도 많고, 가져오고 싶은 것도 많아요. 나름대로 내 것을 한다고 하는데 학철 씨 것이 부러워요. 강조하지만 경쟁이라는 말은 내가 배울 게 많다는 의미에요.”
-김학철에게 김형일이란?
“저는 달라요. 경쟁자로 안 느껴요. 영원한 내 편이에요. 만나면 든든해요.”
맞다. 확실하게. 캐릭터가 다르다. 그런데 잘 맞아 시너지가 난다.
“‘태조 왕건’ 할 때 찍은 에어컨 광고가 기억나요. 내가 박술희 대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시원하겠구만’ 했어요.”(김형일)
“맞아. 우리가 편하게 (에어콘) 회사가 좋아할 명장면을 만든 거예요. 그 장면이 예비 컷이었다가 메인이 됐지. 이런 거죠. 우리 사이가.”
지금의 기억을 남기고 싶어 김학철이 구독자 10만을 자랑하는 자신의 유튜브 ‘김학철 TV’ 라이브를 연결하니 2만 명 넘는 유저들이 들어왔다. 김형일이 비치니 더 몰려들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데 둘은 조건반사적으로 다시 ‘태조 왕건’으로 매일 만날 이유를 찾는다.
“‘태조 왕건’을 ‘전원일기’처럼 10년, 20년 했으면 좋겠어요. 전국 돌아다니면서….”(김형일)
“아니 시즌제로 해버리자.”(김학철)
전국을 돌아다니니 지방과 농촌 살리기도 될 수 있을뿐더러 장군복을 벗은 신숭겸과 박술희가 어느 음식점에 가고 퇴근 후 생활은 어떤지 사는 재미를 다 보여줄 수 있겠다는 별의별 아이디어가 나온다. 신숭겸의 중후한 목소리를 흉내내는 병사도 나올 수 있고, 박술희가 무신에서 문신으로 옮겨 궁궐에서 적응 못하는 에피소드까지…. 기상천외한 김형일의 발상에 김학철은 웃다 지쳐 바닥에 쓰러졌다. 이러니 둘의 우정은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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