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라고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 발표가 한 주 쉬어간 게 윤석열 대통령으로선 참 다행스러울 듯합니다.
한국갤럽은 매주 전국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지지율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추석 직전인 9월 10일~12일 이뤄진 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에게 무선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 결과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최저치인 20%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4월 총선 참패 후 기록했던 직전 최저치(21%)보다 더 떨어진 수치입니다. 응답자 중 20%만 윤 대통령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했고, 70%는 부정적으로 답했습니다.
● “지지율 20% 이하는 레임덕 신호탄”
통상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국정 지지율 20%’를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되는 신호탄으로 봅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내각제 국가에선 지지율 30% 선이 무너지면 내각이 총사퇴하고 총선을 다시 치른다. 대통령제에선 20%를 레임덕의 기준으로 본다. 공무원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뭘 해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 상징적인 숫자”라고 했습니다.
흔히 지지율 30%를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보는데,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면 더 이상 국정 운영이 쉽지 않다는 거죠. 개혁신당 조응천 총괄특보단장은 20일 CBS라디오에서 “지지층을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되는데, 지지층이 어디 가서 뭐라고 얘기를 못 할 정도로 돼버리니까 콘크리트(지지층)에 균열이 온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친한(친한동훈)계인 국민의힘 김종혁 최고위원도 19일 SBS라디오에서 ‘TK(대구·경북)와 70대 이상의 보수 콘크리트 지지층이 많이 이탈한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 건 맞다”고 인정했고요.
지지율 20%, 그것도 아직 임기 반환점도 돌지 못한 시점에 저런 수치가 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윤 대통령이 2022년 3월 대선에서 48.56%로 당선됐던 점을 고려하면 2년 반 만에 30%포인트 가까이가 빠진 셈이죠. 1987년 민주화 이후 당선됐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취임 2년 무렵 문재인 전 대통령은 47%, 박근혜 전 대통령은 33%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44%) 노무현 전 대통령(33%) 김대중 전 대통령(49%), 김영삼 전 대통령(37%) 모두 30~40%대였고요. 심지어 노태우 전 대통령도 28%였습니다.
정치권에선 연휴까지 이어진 의료 공백과 명절 직전 터진 김건희 여사의 총선 공천 개입 논란을 고려할 때 이번 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나마 윤 대통령에겐 불행 중 다행 격으로 여론조사 발표가 한 주 쉬어간 거죠.
그동안 역사 속에서 대통령 지지율 20% 선이 무너지면 사실상 국정 운영이 어려운 지경이 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7년 10월 최순실 국정 개입 의혹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10월 3주 차 25%에서 한 주 만에 17%로 떨어져 처음으로 10%대를 기록했습니다. 그 뒤로 11월 내내 평균 5%를 보이다가, 결말은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고요.
박 전 대통령 외에도 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재임 중 한 번이라도 10%대 지지율을 기록했던 대통령은 모두 다음 대선 때 야당에 정권을 뺏겼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5년 차이던 1997년 2~5월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고 14% 지지율을 기록했죠. 그 해 5~8월엔 지지율이 7%대까지 떨어졌고요. 그 결과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줬습니다. 임기 4년 차 때 16%를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결국 정권을 내줘야 했습니다.
체코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의 이번주 갤럽 지지율이 어찌 될지 아직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9∼2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0.3%로, 일주일 전 최저치(27.0%) 결과 대비 3.3%포인트가 오르긴 했더군요. 산적해 있는 의료공백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딱히 드라마틱하게 반등할 만한 요인은 없어 보입니다.
●20% 틈타 거부권 무력화 노리는 野
야당의 공세도 매섭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추석 직후부터 20%라는 숫자에 대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지지율 정체’ 국면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려는 듯한 모습입니다.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 ‘추석 민심과 향후 정국’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윤석열 정권 국정 지지도는 긍정 20%, 부정 70%로 회복 불가 상태가 고착되고, 이재명 대표의 차기 지지도는 40%대 초반으로 국민의힘 어떤 후보에 대해서도 안정적 우위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 지지도 20%대는 정권 붕괴 전조에 해당됐다”며 “체감 민심과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현재는 국민 분노가 임계점에 달해 ‘심리적 정권 교체가 시작된 초입 국면’”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다음날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20% 지지율로는 개혁은커녕 국정 운영도 어려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요.
실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을 지렛대 삼아 김건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 지역화폐법을 19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해버렸죠. 윤 대통령이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똑같은 일(거부권 행사)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토양과 환경은 변하는 법”이라며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20%대로 접어들수록 국민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인지 (대통령 스스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의 원내지도부 의원도 “대통령도 지지율 20% 선이 무너지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야당은 그때 대비해 계속 우리가 할 일을 하고, 재차 특검법을 발의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민주당은 ‘20%’가 여권을 분열시킬 숫자가 될 것으로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그동안은 의석수에 밀려 결국 윤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지해 오던 국민의힘도 레임덕이 본격화되면 대통령실과 선 긋기에 나설 것이란 계산입니다. 민주당은 특히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을 앞두고 용산과 여당 간 갈라치기에 본격 나선 모습입니다. “여당 의원들도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심상치 않은 지역 민심을 충분히 체감했을 것”이라며, 한껏 이탈표를 자극하는 중이죠.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20일 당 회의에서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만들려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권의 몰락만 앞당길 뿐”이라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강력 건의하겠다며 정신 못 차리는 국민의힘에도 경고한다. 분노한 민심에 불을 지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중단하라. (중략) 몰락하는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지 말고, 이제라도 민심을 따르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도 “민심의 큰 흐름은 특검법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민심의 최접점에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가 있겠느냐. 저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본다”고 했고요. 당 법률위원장인 박균택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재표결이 이뤄지면 이번엔 통과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고 했고요.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24일경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거부권을 행사한 그날 저녁 한동훈 대표와 만찬을 갖고 여당 의원들의 표 단속에 나서지 않겠냐는 거죠. 과연 20%라는 숫자가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윤 대통령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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