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반항의 상징 ‘데님’, 우아하게 돌아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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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와 하이패션 넘나들어
한 세기 넘도록 남녀노소 사랑받아
시대 정신이 담긴 패션 아이콘
고상하고 격식 있는 데님룩 등장

여러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데님 소재로 된 룩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사카이의 데님 스커트 셋업(왼쪽 사진), 셔츠와 재킷에 팬츠까지 데님으로 선보인 샤넬(가운데 사진), 화이트 스티치와 화려한 주얼 장식으로 완성한 디올 맨의 데님 셋업. 각 브랜드 제공
여러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데님 소재로 된 룩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사카이의 데님 스커트 셋업(왼쪽 사진), 셔츠와 재킷에 팬츠까지 데님으로 선보인 샤넬(가운데 사진), 화이트 스티치와 화려한 주얼 장식으로 완성한 디올 맨의 데님 셋업. 각 브랜드 제공
한 세기가 넘도록 시대를 아우르며 전 세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소재가 있다. 바로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데님이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청바지를 발명한 사람은 나였어야 했다”며 입버릇처럼 말할 만큼 데님은 스트리트와 하이패션의 중심에서 패션 신을 이끌어온 주역이다.

그 역사는 100년보다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0년경 당시 세계의 이슈는 금광이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 남서부로 몰려가 밤낮없이 황금을 찾아 곡괭이질을 해대던 시기였다. 광부들에겐 더욱 질기고 튼튼한 작업용 바지가 필요했다. 이들을 상대로 각종 집기를 판매하던 상인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고심 끝에 팔다 남은 천막 천을 가져다가 바지를 만들어 판매했다. 이것이 오늘날 청바지의 기원이 될 줄은 몰랐으리라. 이후 자신의 이름인 리바이스(Levi’s) 상표를 붙인 청바지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며 본격적인 청바지 대중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청바지는 노동자의 옷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벗어던진다. 당대를 주름잡던 스타들이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거리에는 청바지 차림의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특히 청바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가 제임스 딘이다. 그가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선보인 청바지 패션은 반항적인 젊은이를 상징하는 문화가 됐다. 말런 브랜도 역시 영화 ‘워터프런트’에서 몸에 딱 붙는 셔츠와 청바지에 가죽 재킷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인기를 끌었다. 여성들의 영원한 패션 아이콘 매릴린 먼로가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입었던 청바지 3벌은 경매에서 3만70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청바지 판매량은 역대 최고조에 이른다. 미 전역에서 시간당 약 6만 벌씩 팔렸다. 1년간 생산된 청바지를 일렬로 눕히면 그 길이는 약 80만 km로 지구 적도 20바퀴를 돌고도 남을 정도였다.

1980년 패션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은 하이틴 스타인 브룩 실즈를 모델로 한 청바지 광고를 선보여 한 달 만에 200만 장 이상 파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이패션계에 입성한 데님 팬츠는 이후 글로리아 밴더빌트, 피터 골딩, 피오루치 등 굵직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합류하며 스트리트와 하이패션을 넘나드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데님은 동시대적 아이템으로 매 시즌 변주를 거듭하며 패션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팬데믹 이후 포멀과 캐주얼의 경계가 무너지고 편안한 멋을 추구하는 뉴노멀(New Nomal)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님 소재는 더욱 많은 디자이너의 선택을 받고 있다.

2024 가을·겨울 컬렉션에선 데님 소재의 셔츠와 블레이저에 미디스커트까지 등장하며 그 어느 때보다 격식 있고 우아한 데님 신을 연출했다. 사카이와 빅토리아 베컴이 대표적이다. 데님의 생생한 질감이 드러나는 반듯한 스커트 셋업은 오피스 룩으로도 거뜬해 보인다. 셔츠와 재킷에 팬츠까지 데님으로 갖춰 입은 샤넬과 스키아파렐리의 세련된 슈트는 데님은 캐주얼하다는 오랜 편견을 단번에 잠재웠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어떤 소재와도 조화를 이루는 데님의 장점을 적극 활용했다. 데님과 헤링본 소재를 믹스한 둥근 코쿤 스타일의 점퍼와 스커트로 유연하게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데님 셋업에 롱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겐조와 미우미우 룩은 보다 현실적인 답안지다. 빈티지한 워싱 공법으로 데님 소재를 한 폭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디젤의 데님 룩도 두 눈을 즐겁게 했다.

남성 컬렉션에서도 데님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드리스 반 노튼, 발렌티노, 프라다, 우영미 등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클래식한 슈트 재킷과 팬츠에 데님 소재를 도입했다. 매일 입는 슈트가 어쩐지 지겨울 때 색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디올 맨은 더 고상했다. 청색과 대비되는 화이트 스티치와 화려한 주얼 장식으로 완성한 데님 셋업으로 청청패션의 격을 단숨에 올려놓았다. 1980년대식 웨스턴 무드의 프릴 장식 데님 셔츠와 벨 보텀 팬츠로 여성복만큼이나 영감을 자극한 루이비통과 성글게 짠 니트 카디건을 둘러 더없이 낭만적이고 자유로웠던 윌리 차바리아의 데님 룩도 매력적이었다.

자유와 반항의 상징이었던 데님이 이처럼 우아하게 돌아온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데님은 시대 정신이 담긴 패션 아이콘으로 우리 곁을 오랜 기간 지켜 왔다. 실용성이 중요한 덕목이 된 지금, 시대에 부합하는 최적의 소재는 아마도 데님일지도 모른다. 데님이 지닌 유연한 태도로 그 어느 때보다 고상하게 트렌드를 즐겨볼 때다.

#데님#스트리트#하이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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