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달콤한 유혹, 불행한 결말[기고/배정석]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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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
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
최근 삼성전자 전직 임직원들이 중국으로 반도체 핵심 기술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 이들은 경제적 가치가 4조3000억 원에 달하는 삼성의 핵심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한국을 먹여 살리는 ‘최종 병기’라는 반도체가 산업 스파이들에 의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제조업이 강한 한국은 기술 유출이 심각하다.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최근 10년간 해외 기술 유출 실태를 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자동차, 정보통신, 2차전지, 전기전자 분야가 176건(77.8%)으로 주력 산업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분야는 ‘국가핵심기술’ 유출 비율이 전체 18건 중 15건으로 83.3%에 달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과 기술 격차가 큰 중국이 단시간에 차이를 줄인 것도 공격적인 기술 탈취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은 기술 인력을 빼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고액 연봉과 생활 여건 보장 등 솔깃한 조건에 현혹돼 섣불리 이직을 추진할 경우, 핵심 기술만 빼앗기고 토사구팽 당하거나 현지 적응 실패로 낭인이 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첨단 디스플레이 공정 전반을 다룰 수 있는 핵심 인력이라며 파격적인 조건으로 3년 근무를 보장하고도 1년 반 만에 성과 부족을 사유로 해고한 경우도 있다. 연봉의 2배 및 아파트와 자동차를 제공하며 3년 고용을 보장받고 영입된 조선업체 직원이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의 핵심 공정 추가 기술 탈취를 요구하는 중국 업체의 강압에 못 이겨 1년 만에 귀국한 사례도 있다. 이렇게 귀국한 기술자들은 기술 유출자로 낙인찍혀 재취업이 불가능해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된다.

계약 위반을 주장할 수도 있지만 자국 기업 보호를 우선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외국인이 권리를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다. 막연히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며 중국 진출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인재 유출은 통제가 어렵고 기술이나 장비와는 달리 규제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인들의 자각이 중요하지만 실태를 알리고 현실을 일깨워 주는 국가적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특히 기술 유출에 대한 한국의 형량은 솜방망이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조속한 개선이 요구된다. 산업기술보호법이 산업기술의 국외 유출에 대해 15년 이하의 징역으로 비교적 엄중히 처벌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실형 선고 비율은 10% 선에 불과하다. 그나마 형량도 1, 2년이다. 이토록 형량이 적은 것은 기술 유출을 단순 재산범죄로 판단하는 경향 때문이다.

해외로의 기술 유출은 해당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관련 산업 전반의 국가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는 중대한 국가안보 위협 행위로 봐야 한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이 특정 요건에 해당하는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보는 이유이다. 법원의 전문성 강화와 양형 기준 정상화가 절실하다.

#국가핵심기술#기술 유출#경제스파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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