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2026∼2030년 5년간 적용되는 제12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합의했다. 이에 한국은 2026년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방위비 분담금으로 올해보다 8.3% 증가한 1조5192억 원을 부담한다. 정부는 11월 미국 대선을 33일 앞둔 4일 이번 합의 내용을 전격 발표했다. 앞서 4월 양국이 조기 협상에 착수한 지 반년 만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조 바이든 행정부와 그간 진행된 협의를 무시할 가능성이 큰 만큼 한미 모두 합의문 마련에 속도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트럼프 후보 당선 시 재협상 요구 가능성이 작지 않아 ‘트럼프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란 평가도 나온다.
외교부가 이날 공개한 제12차 SMA 합의 내용에 따르면 첫해인 2026년 분담금만 전해 대비 8.3% 증액하고, 이후엔 분담금 인상률을 물가상승률에 연동시킨다. 2026년 총액은 최근 5년간 연평균 분담금 증가율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증원 소요 등까지 반영돼 8.3%로 비교적 높지만 이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다는 것.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은 각각 2.4%와 2%다. 한미는 이번에 연간 방위비 증가율이 5%를 넘지 않도록 하는 ‘증가율 상한선’도 다시 도입했다.
한미는 앞서 2021년 제11차 협상에서 처음으로 국방비 증가율에 연동시키기로 합의해 적용해 왔지만 이번에 다시 물가상승률에 맞추기로 했다. 제11차 협상을 통해선 분담금이 첫해 13.9% 인상됐고, 이후 국방비 증가율과 연계돼 연평균 4.3%씩 올랐다.
미 대선에 앞서 한미 SMA 협상이 타결되면서 우리 정부 내부에선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민감한 방위비 문제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근거를 마련했다”는 자평이 나왔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가 집권해도 합의 자체를 쉽게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트럼프 1기’ 당시 분담금을 5배 증액하라고 요구한 트럼프 후보가 백악관에 들어서면 재협상을 주장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SMA는 한국에선 국회 비준을 받는 ‘조약’이지만 미국에선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행정협정’이다.
방위비, 美차기 대통령이 재협상 요구 가능… ‘트럼프 리스크’ 우려
한미 분담금 협상 타결 트럼프 집권 가능성 염두 속전속결… “협정 깨면 美 책임이라 부담 클 것” 2026년 이후 물가상승률과 연동… 5% 넘지 않도록 상한선 다시 도입 ‘한반도 주둔 자산에만 사용’ 명문화
미 대선을 33일 앞두고 한미가 제12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타결 사실을 전격 발표하면서 불확실한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향후 안정적으로 분담금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는 일단 마련했다. 다만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미국에선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연방 행정협정’이라 대통령 결단만으로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월 미 타임지 인터뷰에서 “왜 우리가 부유한 국가를 방어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등 여러 차례 방위비 재협상에 나설 의지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후보 집권 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에 따른 ‘트럼프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재협상을 하자고 해오더라도 이번 한미 합의로 (트럼프 주장에 맞서) ‘우리의 협상 베이스는 여기’라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트럼프 집권 시 재협상 주장할 수도”
4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보다 8.3% 인상한 1조5192억 원으로 하고, 2027∼2030년에는 매년 우리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인상하는 안에 합의했다. 한미 협상 대표는 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합의문에 가서명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한미는 이태우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와 린다 스펙트 국무부 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을 수석대표로 4월부터 협상을 이어왔다. 앞서 11차 협상 당시엔 트럼프 정부 때 시작됐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하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타결됐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조기 협상에 나섰고, 그 반년 만에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이번 SMA를 파기하거나 오히려 바이든 정부를 비난하며 더 강한 협상을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선 SMA가 ‘행정협정’으로 분류돼 한국처럼 국회 비준 절차가 필요 없다. 이번 SMA에는 “협상이 서면 합의에 의해 개정되고 수정될 수 있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기존 SMA에도 이 문구가 있었지만 일각에선 트럼프 후보가 집권하면 이 문구를 재협상 근거로 들고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전직 외교부 당국자는 “트럼프의 주요 관심사는 ‘돈 문제’”라며 “집권 시 바이든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번 협정을 타깃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집권 시 한국에 재협상을 요구해 오더라도 이번 SMA 타결에 따라 한국 정부가 트럼프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방어할 근거를 확보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재협상을 해도 이번 합의가 기초 베이스가 되는 것”이라며 “이미 합의한 이상 협정을 깨도 미국의 책임이 되는 만큼 미 측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합의에 성공하면서 2020년과 같은 ‘협정 공백’ 재발 가능성은 현저히 낮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적어도 한국에 방파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직전 11차 SMA 당시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합의안 승인을 거부하면서 1년 3개월간 협정 공백이 생겼고, 주한미군 근로자 무급휴직 사태가 불거진 바 있다.
● 연간 인상률 5% 못 넘게 ‘상한선’ 마련
앞서 11차 SMA 때 한미는 방위비 분담금을 처음으로 국방비 증가율에 연동되도록 했지만 이번엔 연간 인상률을 물가상승률에 맞추기로 합의했다. 당시 연간 5% 안팎인 국방비 증가율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에선 “분담금 폭탄을 안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이번 SMA에선 한미가 물가상승률 기준으로 다시 바꾸면서 한국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5년 물가상승률을 2%로 전망했다. 이 전망치를 적용하면 2026년 1조5192억 원으로 시작한 분담금은 매년 2%씩 늘어 2030년 1조6444억 원 수준이 된다. 첫해 8.3%를 포함하면 연평균 증가율은 3.2%가 된다. 반면 이전 협정처럼 국방비 증가율(연간 5% 수준·첫해 포함 시 5.7%)로 적용하면 2030년 한국의 분담금은 1조8466억 원가량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정부는 연간 분담금 인상률이 5%를 넘지 않도록 하는 ‘상한선’도 다시 도입했다. 이 상한선은 과거 8차(2009∼2013년)와 9차(2014∼2018년) 협정 때는 4%였지만, 10차와 11차 SMA에선 빠진 바 있다.
한미는 이번 SMA에서 “한국의 분담금을 한반도 주둔 자산의 수리, 정비 용역에만 사용한다”는 점도 명문화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주일미군 전투기 정비 등에 한국의 분담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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